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96
한자 鄭占用
영어공식명칭 Jeong Jeom yong
이칭/별칭 정점용(鄭点用)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 정점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정점용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4년연표보기 - 정점용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정점용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부곡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정점용(鄭占用)[1897~1964]은 1897년(광무 1)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부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정점용(鄭点用)이다.

[활동 사항]

정점용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영해면 만세운동은 기독교 측 김세영(金世榮)·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과 지역 유지들의 주도 아래 전개되었다. 특히, 권태원이 3월 15일 병곡면 송천리의 정규하를 만나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는데, 이때 정규하는 "3월 18일 영해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정규하의 제안에 권태원이 동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권태원정규하영해면 3.1독립운동을 위하여 동지규합 및 태극기 제작에 나섰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정규하는 남계병(南啓炳)·남효직(南孝直) 등 2천 명의 군중과 함께 영해면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군중들은 영해면에 있는 일제 침략기관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뿐만 아니라, 공립보통학교와 공립소학교 등지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정점용은 영덕경찰서장 일행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붙잡았으며, 이어 독립만세를 외쳤다.

정점용은 영해면·병곡면 만세운동이 끝난 3월 19일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붙잡혔다. 당시 영해에서 250명, 병곡에서 40명이 붙잡혀 총 290명이 구금되었다. 정점용은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 검사국과 대구지방법원을 거쳐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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