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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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仁述 |
영어공식명칭 | Lee Insul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6월 13일 - 이인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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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1년 - 이인술 가고시마수산학교 입학 |
몰년 시기/일시 | 2017년 9월 29일 - 이인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이인술 대통령 표창 수상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인술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강구동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포항시 |
학교|수학지 | 가고시마수산학교 - 일본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인술(李仁述)은 1925년 6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강구동[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에서 태어났다. 손난연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6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인술은 어릴 때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1939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1년 일본 규슈[九州]의 가고시마수산학교[鹿兒島水産學校]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일본인 학생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하였으며, 학교로부터 차별을 받았다. 같은 학교인 수산학교에 재학 중이던 10여 명의 조선인 학생과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태극기와 격문을 배포할 목적으로 항일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학생들은 나라를 빼앗겼지만 조선인에게 국기와 조국이 있다는 것을 알려 민족의식을 가지면 독립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이인술은 동지들과 등교 전인 새벽시간 또는 수업이 끝난 후 기숙사에서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여 학교 인근에 살포하였다. 태극기와 격문을 살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오사카[大阪]와 도쿄[東京] 등지로 피신하였다.
이인술은 격문 살포와 태극기 배포를 중단하지 않았다. 등사한 태극기와 격문을 조선인이 많이 모여 있는 오사카의 츠루하시[鶴橋] 일대에 뿌렸다. 결국 1944년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오사카의 사카이[堺] 형무소에 구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1944년 10월 5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광복으로 풀려났다. 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장과 사단법인 한국독립유공자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2017년 9월 29일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