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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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載休 |
영어공식명칭 | Shin Jaehyu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10월 17일 - 신재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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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신재휴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3월 24일 - 신재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신재휴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48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상리 |
활동지 |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신재휴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주소는 영덕군 창수면 갈상리이다.
[활동 사항]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 하에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창수면 만세시위에 앞서 창수동의 이수각, 신리동의 이현설·권재형(權在衡), 인량동의 이현우(李鉉祐)는 동지를 규합하여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각 마을 주민들에게 권유하였다. 오후 4시 무렵, 약 200명의 군중은 각자 태극기 및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신리동에 거주하던 신재휴도 이때 합류하여 창수주재소에 들어가 만세를 부르짖고, 건조물 파손 및 문서를 파훼하는 데 동참하였다.
이후 일제의 검거로 체포된 신재휴는 4월 5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대전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