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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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永和 |
영어공식명칭 | Shin Yeonghwa |
이칭/별칭 | 신창원,평산영화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6월 28일 - 신영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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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2월 - 신영화 조선건국단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5월 14일 - 신영화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신영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 495 |
거주|이주지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건국단 팔봉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신영화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이며, 이명은 신창원(申昌原), 창씨개명한 이름은 평산영화(平山永和)이다. 1882년 6월 28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 495에서 아버지 신석하(申錫夏)와 어머니 영양남씨(英陽南氏) 남필귀(南必貴) 사이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신영화는 옛 영해 지역의 사족 가문 출신으로 25세 때까지 한학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신병(身病)으로 조상 전래의 연간 벼 200석 정도를 수확하는 재산을 소진(消盡)하고 1920년경 대구로 이거하여 과일상을 운영하였다. 1922년 신영화는 차경석(車京石)이 창시한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였다.
1938년 음력 7월 상순경에는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평산언목(平山彦穆)[신언목(申彦穆)]·중원용석(重源庸錫)[공용석(孔庸錫)] 외 2명과 함께 전북 정읍의 김언수(金彦洙)가 창시한 신흥종교에 입교하였다. 김언수가 창시한 이 신흥종교는 보천교 혹은 시천교(侍天敎)를 표방하며 교인들을 결속하고 있었다. 이에 김언수의 초청으로 정읍군 덕천면(德川面) 신월리(新月里)에서 열린 교인들의 모임에 참석하였다. 김언수는 이 모임에서 “우리 교도의 손으로 조선을 독립시켜야할 시기가 도래하였고, 그 시기는 1942년 음력 2월 21일로 일본·중국 및 서양제국도 우리나라의 지배하에 들어온다.”고 말하고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조선건국단을 조직하였다. 조선건국단은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지만, 관헌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표면적으로는 시천교를 포교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다. 신영화는 김언수의 말에 찬동하여 최고 간부인 팔봉(八奉)의 직책을 맡고, 강원도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동지 규합, 세부 조직 결성, 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40년 12월에 강원도 울진·평창·영월군을 다니며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신영화는 강원도 영월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1942년 6월 22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일제의 판결에 공소하였으나 6월 29일 경성지방법원 원주지청에서 원심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14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