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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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甲壽 |
영어공식명칭 | Shin Gapsu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6월 22일 - 신갑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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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03월 19일 - 신갑수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8년 10월 5일 - 신갑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신갑수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신갑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35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48 |
활동지 |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텃밭 [창수리 453-6 텃밭]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신갑수(申甲壽)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35번지이고,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48번지이다.
[활동 사항]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에 의해 주도되었고, 약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은 동지를 규합하여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각 마을 주민들에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오후 4시 무렵, 약 200명의 군중은 각자 태극기 및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와 신리동의 권덕명(權德明) 등은 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라고 독려하였다. 이때 신리동 출신의 신갑수도 시위대에 참여하여, 돌을 던지며 창수주재소 벽을 무너뜨리는데 동참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갑수는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 안의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 버리고 파기하였다. 뒤이어 순사 숙소에도 들어가 의류를 꺼내 던졌다.
이에 신갑수는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신갑수는 5월 2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기물 훼기,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7월 17일 대구지검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묘소]
대전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