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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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孟學根 |
영어공식명칭 | Maeng Hak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진호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8월 12일 - 맹학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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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맹학근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71년 1월 22일 - 맹학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맹학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
활동지 |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맹학근(孟學根)은 1885년 8월 12일에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영해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영해면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창수면의 오촌동·삼계동·갈상동·신리동 주민들이 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여하고자 영해면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시간상 어려움이 있어 군중들은 창수동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군중들이 창수동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창수동의 구장 이수각(李壽珏)은 아들 이학술(李學述) 등과 주민들 찾아다니며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수각의 제안에 맹학근을 비롯해 김상준(金尙俊)·김화원(金華元)·나성운(羅星雲) 등 수십 명이 군중에 합류하게 된다.
3월 19일 오후 4시경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약 200명의 군중들이 모여 들면서 창수면 3.1독립운동은 시작되었다. 군중들은 각자 몽둥이를 휴대한 채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현설·이현우·권재형 등이 군중들을 선두에서 이끌고 김재수(金在守)·권덕명(權德明) 등은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주재소를 파괴하라고 외쳤다. 맹학근은 같은 마을의 김상준·김화원·나성운·나재성(羅在星)·남출이(南出伊) 등과 함께 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이 주재소로 들어가 일경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순사와 순사보들은 탈주하였다. 그러자 이현설·이수각 등이 지휘하여 군중들이 주재소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맹학근도 김화원·나재성·남출이·김도치(金道致) 등과 함께 주재소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버리고 파기하였다.
창수면 3.1독립운동이 끝난 후 일경은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맹학근도 체포되어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