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39
한자 南孝直
영어공식명칭 Nam Hyojik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연표보기 - 남효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효직 영해면 3.1독립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 남효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남효직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남효직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남효직은 1875년(고종 12)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이다.

[활동 사항]

남효직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남효직은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정규하(丁奎河)·권태원(權泰源)·남세혁(南世爀) 등과 함께 협의하여 3월 18일 영해면 성내리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남효직 등은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위해 동지규합 및 태극기 제작에 나섰다. 특히 정규하는 바로 지역 양반들의 참가 권유를 부탁하였으며, 3월 16일에는 병곡면 송천리 예배당에서 90여 명의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였다. 또 3월 17일에 정규하는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남효직영해면 성내리 시장에 약 2천 명의 군중이 운집하자,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을 뿐만 아니라,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남효직은 군중들과 함께 영해면에 있는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학교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정규하는 오후 2시경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병곡면으로 이동하여 주재소·면사무소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영해면·병곡면 만세운동이 끝난 3월 19일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당시 영해에서 250명, 병곡에서 40명이 붙잡혀 총 290명이 구금되었다. 일제의 검거를 피한 남효직은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궐석재판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다가 일경에 붙잡혀 1922년 8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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