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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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盤石 |
영어공식명칭 | Kim Ban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진호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5월 5일 - 김반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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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김반석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8월 13일 - 김반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김반석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반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
활동지 |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반석(金盤石)은 1893년 5월 5일에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정규하(丁奎河)·권상호(權相鎬)·박의락(朴義洛) 등의 주도로 영해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면서, 영덕군 각 면으로 3.1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런 가운데 3월 19일 영양의 이종구(李鍾龜)가 창수면 오촌동·삼계동의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영해면 3.1독립운동에 가담하고자 영해로 향하였다. 갈상동과 신리동의 주민들도 영해로 향하였다. 창수동에 살던 김반석은 주민들이 영해로 향하던 당시 이현우(李鉉祐)와 김재룡(金在龍) 등의 권유를 받고 참가하였다.
3월 18일 오후 4시경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약 200명의 군중들이 집합하였다. 군중들은 각자 몽둥이를 휴대하거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로써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 신리동 권덕명(權德明) 등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재소를 공격·파괴하라며 소리쳤다. 김반석은 창수동의 나재성(羅在星)·나성운(羅星雲)·남출이(南出伊) 등과 함께 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소리쳤다. 이어 군중들이 주재소를 공격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순사와 순사보들이 주재소를 벗어나 도주하였다. 그러자 군중들이 주재소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반석도 박계도(朴啓道)·이석범(李錫範)·윤학근(尹學根) 등과 함께 몽둥이로 주재소 벽을 무너뜨렸다.
창수면 3.1 독립운동이 종료된 후 일경의 본격적인 검거 작전이 시작되었다. 김반석도 체포되어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