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15
한자 金東澤
영어공식명칭 Kim Dongtaek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9월 9일연표보기 - 김동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김동택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김동택 병곡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57년 4월 30일연표보기 - 김동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김동택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동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병곡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동택(金東澤)[1885~1957]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영덕군 지품면 낙평리 교회 조사(助事)로서 경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직접 목격한 김세영(金世榮)과 구세군(救世軍)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병곡면 송곡리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에 의해 계획되었다. 김세영 등은 3월 18일 영해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군내의 영해면·병곡면·축산면·창수면의 기독교도와 토착 향반을 규합하였다. 당시 김동택정규하로부터 참여를 권유받았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서 영해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김동택은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김동택과 군중들은 영해주재소로 진입하여 일본 경찰을 위협하여 그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이때 주임순사 스즈끼[鈴木鶴次郞]가 해산을 명령하며 태극기를 뺏으려 하자, 김동택 등은 곤봉과 돌멩이로 주재소를 파괴하고 순사부장을 넘어뜨린 후, 2명의 일본 순사의 모자와 칼을 빼앗았다. 그 뒤 영해공립보통학교로 가서 평소 일제의 정책을 찬양하던 교사들을 규탄하였다. 또한 일본인 소학교, 우편소, 면사무소를 공격해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재차 영해주재소로 몰려가 장총 4정과 87발의 실탄을 탈취 파기하였다.

오후 2시경 김동택 등의 군중 200여명은 병곡면으로 향하였는데, 연도에 사람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은 500명으로 불어났다. 병곡주재소는 인근 평해의 일본 헌병분견소에 응원을 요청하고 삼엄하게 경계를 하였다. 김동택 등이 병곡주재소 앞에 다다랐을 때 일본 경찰이 시위를 제지하려하자, 투석으로 대항하였다. 이어 곤봉과 낫 등을 들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였으며, 이웃한 면사무소도 공격하였다. 그러나 평해에서 증원되어 온 3명의 일본 헌병과 주재소 순사가 합세하여 총을 겨누며 위협하자 정규하의 만류로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김동택도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의 판결에 공소하였으나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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