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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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德圭 |
영어공식명칭 | Kim Deokgyu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11월 13일 - 김덕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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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김덕규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2월 11일 - 김덕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덕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덕규(金德圭)[1874~1944]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영덕군 지품면 낙평리 교회 조사(助事)로서 경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직접 목격한 김세영(金世榮)과 구세군(救世軍)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병곡면 송곡리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에 의해 계획되었다. 김세영 등은 3월 18일 영해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군내의 영해면·병곡면·축산면·창수면의 기독교도와 토착 향반을 규합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서 일어난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영덕군 각 면에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었다.
영해면에서 먼저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당시 창수면 신리리에 거주하던 김덕규는 이현우로부터 참여 권유를 받았다. 이현우의 권유에 3월 19일 오후 4시경 김덕규를 포함해 약 200명의 군중이 창수주재소 부근에 결집하였다. 김덕규 등은 태극기와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창수주재소를 파괴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열창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창수교까지 행진하였다. 또한 김덕규 등은 일본 경찰들이 몰래 물건을 숨겨 놓은 민가를 습격하여 물건을 파손하였다. 이후 김덕규는 체포되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상해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일제의 판결에 공소하였으나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