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94
한자 李鉉祐
영어공식명칭 Lee Hyeonu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1월 9일연표보기 - 이현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현우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25년 4월 29일연표보기 - 이현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이현우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이현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350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현우(李鉉祐)[1894~1925]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영덕군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정규하(丁奎河)·박의락(朴義洛)·남효직(南孝直) 등이 일으킨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군내 각면으로 확산되었다. 영양(英陽)의 이종구(李鍾龜)가 영해면 3.1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가담하기 위해 3월 19일 창수면 오촌동·삼계동의 주민 수십 명과 함께 영해로 향하다 신기동에 도착하였다. 갈상동의 박재복(朴在福)·김응상(金應相), 신리동의 이현우(李鉉祐)·권재형(權在衡) 등도 주민들과 함께 영해로 가기 위해 신기동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신기동에서 영해로 가는 것을 중지하고 창수동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어 신리동으로 가서 구장 이현설(李鉉卨)을 만나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신리동 주민들은 일제의 도로 공사로 인근의 전답을 강제로 수용당하여 불만을 갖고 있는 터라 적극 참여하였다. 이현우·이현설이 이진택(李鎭澤)·정석출(鄭石出)·김대지(金大智)·황부칠(黃夫七) 등을 설득해 약 150명이 만세 군중에 동참하였다. 또한 이현우는 창수동으로 가서 김반석(金盤石)·박학래(朴鶴來) 등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오후 4시경 약 200명의 군중이 각자 몽둥이를 휴대하거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며 창수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와 신리동 권덕명(權德明) 등이 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라고 소리쳤다. 이현우·이현설·권재형·박치운(朴致雲) 등이 군중들을 이끌며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이 주재소를 공격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일경들이 황급히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현우·권재형·이현설·박재복 등이 주재소로 진입하였고, 이수각·이현설 등의 지휘 하에 군중들이 주재소로 들어왔다. 군중들은 건물·창·벽 등과 시설물들을 파괴하고 서류·장부·공문서·서적 등을 찢거나 사무실 밖으로 내던져 파손하였다. 또한 총 3정과 대검 2개를 파손시켰다. 그리고 일경들의 숙소 담이나 굴뚝을 파손하고 기둥을 부수고 벽을 망가뜨리고 실내로 들어가 목욕장과 목욕장 솥을 부수고 의류·가구·이불·식기 등을 꺼내 파손시켰다. 이현우이현설 등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가 나무 몽둥이로 건물을 부쉈다. 오후 7시경 주재소 등을 파괴한 후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열창하고 개사(改詞)한 노래를 부르며 귀가하기 위해 창수교까지 갔다. 군중들은 일경들이 소유물을 사전에 보관해 둔 사실을 알게 되어 약 30명의 군중들이 장명술(張命述)·박만복(朴萬福)의 안내를 받아 오용이(吳龍伊)·박석문(朴石文)·이강복(李康福)의 집들을 습격해 일경들의 소유물들을 파손시켰다.

창수면 3.1독립운동 이후 일제 경찰의 검거가 이어졌다. 당시 신리동에는 50호 약 260여 명의 주민들이 있었는데, 만세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남성들이 체포되거나 피신하여 16명만 남게 되었다. 이현우도 체포되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이현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0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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