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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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壽珏 |
영어공식명칭 | Lee Sugak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수각(李壽珏)[1872~1955]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일어난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확산되었다. 그런 가운데 3.1운동 소식을 들은 영양의 이종구(李鍾龜)가 3월 19일 창수면 오촌동, 삼계동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영해로 향하였다. 이종구와 마을사람들은 신기동에서 영해로 가는 것을 중지하고 창수동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종구와 마을주민들의 의견에 신기동 주민들이 참여했고 신리동 주민들도 재차 합세하여 창수동으로 향하였다.
이수각은 당시 창수동의 방가동 구장이었다. 이수각은 둘째 아들 이학술(李學述)과 김금석(金錦石)을 통해 맹학근(孟學根)·김상준(金尙俊)·황명석(黃命錫) 등 마을 주민들에게 “한 집에 1명씩 나오라! 만약 나오지 않으면 집을 불태우겠다!”고 전달하며 독립만세 참여를 강력히 권유하였다. 또한 “만세 군중들이 신리동까지 왔다. 서둘러 창수로 가서 만세를 부르라!”고 소리쳤다. 이로써 창수동 일대에서는 많은 인사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오후 4시경 약 200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몽둥이를 독립만세를 외치며, 창수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이로써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군중들이 주재소를 공격하고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 하자 일경들이 도주하였다. 일경들이 도주하자 이수각 등의 지휘 하에 주재소로 진입한 군중들은 주재소 건물·창·벽 등과 시설물들을 파괴하고 서류·장부·공문서·서적 등을 찢거나 사무실 밖으로 내던져 파손하였다. 또한 총 3정과 대검 2개를 탈취해 파손시켰다. 이어서 일경들의 숙소 담과 굴뚝을 무너뜨리고 기둥을 부수고 벽을 망가뜨렸다. 또 실내로 들어가 의류, 가구, 이불, 식기 등을 꺼내 파손하고 목욕장과 솥을 파괴시켰다.
주재소를 공격한 일로 이수각은 일경에 체포되어 4월 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대구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후 공소를 제기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