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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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八龍 |
영어공식명칭 | Yoon Pallyong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2월 13일 - 윤팔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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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9월 - 윤팔룡 산남의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9월 5일 - 윤팔룡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윤팔룡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관동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윤팔룡(尹八龍)[1872~1943]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북내면 관동(冠洞)[지금의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이며, 1908년 체포 당시 37세였다.
[활동 사항]
윤팔룡은 1907년 9월 산남의진에 가담하였다. 의병 가담에 앞서 1905년 12월 고종의 밀지(密旨)를 받든 시종관(侍從官) 정환직(鄭煥直)이 아들 정용기(鄭鏞基)를 불러 영남지방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다. 정용기는 곧바로 고향 영천(永川)으로 내려와 1906년 3월 산남의진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907년 9월 1일 청하군 죽장면 입암전투(立岩戰鬪)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정환직이 산남의진을 이끌었으며, 이때 윤팔룡이 활동하였다.
윤팔룡은 산남의진 동지들과 1907년 9월 3일 청하군 청하분견소(淸河分遣所)를 공격하여 순검 박래호(朴來鎬)를 사살하고 분견소를 불태웠다. 또한 9월 16일 흥해분파소 순사의 숙사를 공격하여 일본인 순사 곤지[權次楮三郞]와 한인 순사 정영필(鄭永弼)을 처단하였다. 10월 29일에는 흥해분파소(興海分派所)를 소각하고, 흥해우편취급소를 공격하여 일본인 소장 이치하라[市原爲太郞]와 이치하라의 가족을 처단하고 건물을 불태웠다. 윤팔룡의 활동은 일제 침략 기구인 통감부의 말단 조직과 앞잡이들을 처단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체포되어 1908년 8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