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72
한자 南啓炳
영어공식명칭 Nam Gyebyeong
이칭/별칭 남세혁,여명,호정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7년 10월 25일연표보기 - 남계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계병,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3년 7월 8일연표보기 - 남계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남계병, 건국포장에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남계병,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34 지도보기
활동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남계병(南啓炳)[1877~1963]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34에서 태어났다. 남계병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여명(汝明), 호는 호정(湖亭), 이명은 남세혁(南世赫)이다. 아버지는 남택만(南澤萬)의 5대 종손인 아버지 남경질(南敬秩)이며, 어머니는 이능찬(李能燦)의 딸 여강이씨(驪江李氏)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가운데 남계병정규하(丁奎河)·남효직(南孝直)·권상호(權相鎬)·박의락(朴義洛) 등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에서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남계병과 동지들은 먼저 병곡면·축산면·창수면 일대의 기독교도와 영덕 지역의 권(權)·남(南)·백(白)·이(李)·박(朴) 등 5성의 양반 및 유지들을 포섭하는 일을 분담하였다. 거사 일시는 1919년 3월 18일, 장소는 영해면 성내리 장터였다.

3월 18일 성내리 장터에 2,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이자, 남계병은 군중 앞에 서서 독립운동 취지에 관한 연설을 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한 뒤 시위 군중과 함께 시장을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과 시장을 행진할 때, 영해주재소에서 일본 순사를 급파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자,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고 휴대하고 있는 칼을 뺏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또한 군중들은 기세를 이용하여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우편소·영해공립보통학교·심상소학교 등을 습격하였다. 군중들의 습격에 영덕경찰서장이 순사와 순사보 등 4명을 지휘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지만, 오히려 집단 폭행을 당하고는 본서로 쫓겨났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궐석재판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궐석재판 후 체포되어 1921년 10월 1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공무집행방해,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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