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몽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67
한자 白夢彪
영어공식명칭 Baek Mongpyo
이칭/별칭 성서(聖瑞),계술재(繼述齋),백몽기(白夢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백몽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백몽표 임진왜란 창의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백몽표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9년 - 백몽표 선전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6년 - 백몽표 무겸선전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5년 - 백몽표 도총부도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6년 - 백몽표 도총부경력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 백몽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74년 - 백몽표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증직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수동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대흥
대표 관직 도총부경력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개설]

백몽표(白夢彪)[1566~1627]는 임진왜란 때 영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은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에 이르렀다.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가계]

백몽표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서(聖瑞), 호는 계술재(繼述齋)이다. 초명은 백몽기(白夢麒)인데 인조의 명으로 백몽표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당문학(政堂文學) 백문보(白文寶)의 9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백호(白琥),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백미준(白眉俊),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백충언(白忠彦),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김함(金涵)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상산김씨(商山金氏), 부인은 참봉을 지낸 김만경(金萬慶)의 딸 증 숙부인 수안김씨(遂安金氏)이다.

[활동 사항]

백몽표는 1566년(명종 21)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무예에 관심이 많았으며, 약관의 나이에 이원익(李元翼)을 만나 군자의 덕목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전란의 조짐이 보이자 곡식을 비축하였고, 정읍현감(井邑縣監)으로 있던 이순신(李舜臣)을 찾아가 군사의 일을 논의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장에서 향병(鄕兵) 수백 인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여러 차례 왜군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또한, 격문을 써서 토적(土賊)을 효유하였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였다. 1594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5년에는 시무를 논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1599년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다. 이때 명나라 장수가 군사를 돌리면서 화첩(畫帖)을 요구했는데, 거슬리는 일이 있어서 화첩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선조가 백몽표에게 화첩을 빨리 전하도록 명하자, 3일 만에 의주(義州)로 가서 화첩을 전달하였다. 명나라 장수가 이에 크게 칭찬하고 붉은 비단 몇 필을 상으로 내렸다. 또한, 동래판관(東萊判官)이 되어 동래·부산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 잔당을 소탕하였다.

1606년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이 되었으며, 이후 익사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623년(인조 1) 비국랑(備局郎)에 올랐고, 1624년 무겸선전관, 1625년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1626년 도총부경력에 임명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묘소가 있다. 조강하(趙康夏)가 묘갈명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1874년(고종 11) 영남 유생이 백몽표의 충절을 기리는 상소를 올려,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