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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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尙任 |
영어공식명칭 | Kwon Sangim |
이칭/별칭 | 사중(士重),강파(江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22년 - 권상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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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69년 - 권상임 식년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72년 - 권상임 성균관전적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권상임 공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9년 - 권상임 고성현령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 권상임 풍기군수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700년 - 권상임 사망 |
출생지 | 영해도호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
부임|활동지 | 경상남도 고성군 |
부임|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 | 풍기군수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권상임(權尙任)[1622~1700]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현종 시기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가계]
권상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강파(江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만호(萬戶)를 지낸 권응당(權應唐)이고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권의범(權宜範)[1558~1624]이다. 아버지는 첨추(僉樞)를 지낸 권찬(權瓚)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이겸익(李謙益)의 딸이다. 부인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익돈(南益墩)의 딸이다. 형으로 권상길(權尙吉)[1610~1674]이 있다.
[활동 사항]
권상임은 1669년(현종 10) 식년문과에 병과(丙科) 3위로 급제하였지만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귀향하고 시묘살이를 행하였다. 탈상을 마치고 난 1672년(현종 13)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등용되어 본격적인 관직생활을 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지냈고 1675년(숙종 1) 공조정랑(工曹正郎)에 제수받고 춘추관기주관(春秋官記注官)을 겸임하였다.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내면서 고성현령(固城縣令)의 직을 받아 외지로 나아갔고, 1679년(숙종 5) 예조정랑(禮曹正郎)을 거쳐 해남현감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풍기군수(豐基郡守) 수령을 지냈다.
이처럼 내외직(內外職)을 두루 지내면서 많은 관력(官歷)을 쌓고 치적을 남겼다. 특히 풍기군수를 지내면서 백성들이 권상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암벽에 송덕비(頌德碑)를 새겨 넣었다. 경학에 밝아 여러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권상임을 보고 “의리(義理)가 곧고 품격이 맑다.”고 평가하였다. 1692년(숙종 18)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서 후학을 길러내며 영해지역의 문풍(文風) 진작(振作)을 위해 노력하였다.
[학문과 저술]
1775년(영조 51) 후손들이 권상임의 유문(遺文)을 모아 『강파집(江波集)』을 간행하였다.
[묘소]
권상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