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86
한자 午泉里密陽朴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Miryang-Park Clan in Ocheon-rl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2리 김천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23가구[2011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에 있는 밀양 박씨 집성촌.

[개설]

밀양박씨는 경상남도 밀양시를 관향으로 하고,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7~18세기에 밀양박씨 박대생(朴大生)[1629~1714]이 오천2리에 입촌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덕읍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 제34호선을 따라 약 7㎞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지품면 소재지에서는 동쪽으로 약 7㎞ 지점이다. 서북쪽 골짜기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마을 중간에 옹기전수교육관이 있다.

[명칭 유래]

과거에는 금이 많이 난다고 해서 김천(金泉)이라 했으며, 일명 보화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까지 여러 개의 금광이 있었고 계곡의 냇가에서 사금을 채취하기도 하여 많은 사람이 몰려와 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폐광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에 속하여 김천리라 했으며, 1895년 관제 개편 때 상금, 중금, 하금으로 분동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김천리로 기록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김천동[상금·중금·하금동]과 오일동(午日洞)[현재 오천1리]을 합쳐 오천동(午泉洞)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시켰다가 1934년에 지품면에 편입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제가 공포되어 오천2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5세기경 홍씨(洪氏)가 산 계곡을 개척하고 금이 많이 난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김천(金泉)이라 불렀으며, 정씨(鄭氏)가 마을 입구에 자리 잡아 돈골[金谷]이라 했다고 한다. 홍씨가 마을을 떠나고 17세기 말~18세기 초에 밀양박씨 박대생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장수황씨 황충로(黃忠老)와 청송심씨 심성해(沈聖海)가 이 마을에 입주하였으나 이들의 후손은 마을을 많이 떠나고 소수만 마을에 남아 있다. 밀양박씨 입촌조 박대생은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는데 상주에서 난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박대생의 입촌 후 자손이 번성하여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5대손 박용혁(朴龍赫)[1786~1850]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현황]

1992년에 간행된 『영덕향토사』에 의하면 오천2리에 거주하는 53가구 중 밀양박씨가 24가구, 경주최씨 4가구, 청송심씨 4가구, 장수황씨 3가구, 기타 6가구로 밀양박씨가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2011년에도 52가구 중 밀양박씨 23가구로 여전히 밀양박씨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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