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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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有隣郡 |
영어공식명칭 | Yuri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방용철 |
제정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우시군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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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757년 - 우시군을 유린군으로 개칭 |
개정 시기/일시 | 940년 - 유린군을 예주로 개칭 |
관할 지역 | 유린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면|병곡면|축산면 |
[정의]
757년부터 940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유린군(有隣郡)은 본래 우시군(于尸郡)이었는데, 757년 경덕왕이 유린군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우시군이 고구려의 옛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세기 말~6세기 초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영현으로는 해아현(海阿縣)이 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유린군은 통일 신라 시대 지금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축산면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기존의 우시군을 새롭게 정비한 지방행정구역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5 지리지 명주(溟州)조에는 "유린군은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인데,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지금[고려 시대]의 예주(禮州)이며, 영현은 하나이다. 해아현은 본래 고구려의 아혜현(阿兮縣)인데, 경덕왕이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예주조에도 "예주는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유린군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내용]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유린군은 본래 우시군이라 하였는데, 고구려의 옛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다. 757년 신라 경덕왕이 통일 왕조의 지방행정 체제를 개편하고, 한자식 지명을 부여하면서 유린군이 되었다. 영현으로는 해아현[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일대]이 있었는데, 고구려의 아혜현을 경덕왕 대에 개칭한 것이다.
[변천]
유린군은 930년(경순왕 4)에 고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940년(태조 23)에 고려 태조는 유린군을 예주라 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편제할 때 영동도(嶺東道)에 편제하였는데, 기록에 따라 삭방도(朔方道)라고도 한다. 1018년(현종 9)에 전국을 5도 양계(兩界)로 나눌 때 예주는 경상도에 속하도록 했으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사를 두었다.
[의의와 평가]
유린군의 존재는 통일 신라 시대 동해안 일대의 지방지배 방식과 전국에 걸친 지방행정구역 정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