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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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谷里 |
영어공식명칭 | Daegok-ri |
이칭/별칭 | 한실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대곡리는 영덕군 축산면의 남서쪽에 자리하며, 단일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대곡리는 1547년(명종 2)에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다래 덩굴을 치우고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곧이어 해주오씨(海州吳氏)가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부득이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임진왜란을 피하기 위하여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자연 마을로는 동로골 북동쪽에 있는 베게미마을, 한실 동쪽에 있는 동로골 또는 도로동마을, 동로골과 한실 중간에 있는 수반[숲안]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대곡리(大谷里)는 큰 골짜기이므로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대곡리는 조선시대에는 영해부(寧海府)에 속하였고,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지방관제 개편 시 '영해부'가 '영해군(寧海郡)'이 되면서 남면(南面) 소속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로동(陶魯洞)과 묘곡면(畝谷面)의 조항산(鳥項山)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대곡동이라 하고 축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대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곡리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 국사봉[516.4m]을 포함하여 서부 산지는 높이 약 400~500m이고, 동부 산지는 높이 약 150~200m로 분포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동로천이 대곡저수지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발원한 조항천을 합류하며 축산천으로 유입된다. 대곡저수지 상류부 지역에서는 곡저평야의 발달이 미약하지만, 하류부 지역에서는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특히, 동쪽 조항천과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범람원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현황]
대곡리의 2020년 말 면적은 9.25㎢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40가구에 67명[남 27명, 여 4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기암리, 서쪽으로는 영해면 대리와 지품면 도계리와 옥류리, 남쪽으로는 영덕읍 화천리와 지품면 삼화리, 북쪽으로는 칠성리와 조항리가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흥백씨 재사(齋舍)인 도동재(陶東齋), 안동권씨 재사인 대곡재(大谷齋) 등이 있다. 마을 중앙부 골짜기를 따라 대곡길이 개설되어 있고, 대곡길 좌우로 펼쳐진 곡저평야에는 모논들·김밭들 등의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 내에 영덕울진축협한우개량사업소 생축사육장이 있다. 과실류인 사과·배·복숭아 등과 특용작물인 참깨·들깨 등을 재배하고, 경제작물인 시금치·토마토·파·양파·고추 등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