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40
한자 鳳山里
영어공식명칭 Bongsan-ri
이칭/별칭 주산리,주산동,봉동,봉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해군 서면 주산동·봉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영해군 서면 주산동·봉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봉산동으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봉산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0.22㎢
가구수 37가구
인구[남/여] 59명[남 35명|여 22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봉산리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의 남서쪽에 자리하며, 단일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봉산리(鳳山里)는 자연 마을로는 봉동(鳳洞), 주산(周山), 산성리(山城里), 굴암(窟岩)[굴바우, 星岩] 등이 있다. 봉산리는 이 중 봉동(鳳洞)의 봉(鳳) 자와 주산동(周山洞)의 산(山) 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인 봉동은 마을 앞산이 봉황새가 앉아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므로 봉전(鳳田)이라고도 하였다. 주산은 마을의 앞산 봉우리가 둘러 있는 모습에서 붙여졌다. 산성리는 신라시대 주도(周鍍)가 피란길에 이곳에 산성을 쌓고 진(陳)을 쳤다고 한다. 굴암은 마을이 좁은 산곡에 있어 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봉산리는 1500년(연산군 6)경 울진임씨(蔚珍林氏)가 입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뒤 함안조씨(咸安趙氏)가 입주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산리라 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 때 주산동(走山洞)을 주산동(周山洞)으로 하고 봉동으로 분동하였다. 이후 1914년 4월 1일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동과 주산동을 병합하여 봉산동이 되어 달산면에 편입되었다. 1961년 3월 1일 「달산면 분동 설치에 관한 조례 공포」로 구가 동으로 바뀌었다.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봉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봉산리의 북서쪽과 서쪽은 높이 약 550~650m 산지, 남쪽과 동쪽은 높이 약 400~500m 산지, 그리고 북동쪽은 높이 약 150~250m의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산지에는 북서쪽 굴바위골과 강창골, 남쪽에는 산성골, 동쪽에는 삼베나무골, 대처바우골, 북동쪽에는 삼베나무골, 대처바우골, 회나무골, 가메골, 웅구골, 아리골, 뒷골, 중앙에는 홍골과 설티골 등이 형성되어 있다. 봉산리의 남서쪽에는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넘어가기 위한 고갯길인 봉산재와 주산재가 조성되어 있다. 북쪽과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동쪽으로 흘러 봉산저수지로 모여들어 소서천(小西川)을 이루며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저수지에서 빠져나온 소서천을 따라 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현황]

봉산리의 2020년 말 면적은 10.22㎢이며,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37가구에 59명[남 35명, 여 22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주응리(周應里)팔각산[632.7m],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남쪽으로는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內龍里)와 항리(項里)가 군계(郡界)를 이루고, 북쪽은 덕산리와 접하고 있다. 봉산리는 달로산성지와 주산재의 전설이 깃든 양설령(兩雪嶺)이 있으며, 남서쪽 내룡리에서 북동쪽 덕산리까지 봉산리를 가로지르며 지방도 제914호선이 지나고 이 도로의 북쪽 지역에 논농사 중심의 경작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봉산리는 벼농사를 비롯하여 밭농사로 콩·팥·녹두·옥수수·메밀·고구마·감자·수박·배추·무·고추·양파·마늘·참깨·담배 등의 작물과 사과·배·복숭아·감 등의 과일을 생산한다. 특산물로는 송이버섯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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