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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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藏 |
영어공식명칭 | Beob Jang |
영어음역 | Beob Jang |
영어공식명칭 | Beob Jang |
이칭/별칭 | 지숭(志崇),고봉(高峰)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종수 |
출생 시기/일시 | 1350년 - 법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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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26년 - 법장 송광사 주석 |
몰년 시기/일시 | 1428년 7월 21일 - 법장 사망 |
출생지 | 법장 출생지 - 황해도 신천군 |
학교|수학지 | 순천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국사 |
[정의]
조선 전기 순천 송광사에서 국사를 지낸 승려.
[활동 사항]
법장(法藏)[1350~1428]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16대 국사이다. 황해도 신주(愼州)[현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어머니는 임씨(林氏)이다. 법장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20세 전후에 승과(僧科)에 합격하였으나 명리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수행하였다.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화상(懶翁和尙) 혜근(惠勤)[1320~1376]을 만나 법을 인가받으니 법명은 지숭(志崇)이고 호는 고봉(高峰)이다. 이후 머리도 깎지 않고 표주박 하나를 들고 떠돌아다니다가 경상북도 안동시의 청량산에 암자를 짓고 30년간 수행하였다.
법장은 1395년(태조 4) 남쪽으로 유행하다가 낙안군 금수(金藪)[전라남도 순천시 금둔사로 추정]에 머물 때 꿈속에서 경치가 빼어난 곳에 사찰을 짓는 것을 보고 이튿날 곧장 조계산 송광사로 가서 중창을 발원하였다. 1399년(정종 1) 궁궐에 가서 송광사 중창을 요청하여 임금의 교지를 받았다. 1400년 7월 임금의 교지를 들고 송광사 대중에게 권면(勸勉)[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마침내 전각 두세 곳이 완성될 무렵 송광사를 떠났다. 이후 경상도 김해 신어산 각암(覺庵), 경주 봉서산 원원사(遠源寺) 등 여러 사찰을 다니며 수행하였다. 1420년(세종 2) 중인(中印)이 법장 문도의 도움을 받아 송광사 중창을 시작하여 1428년(세종 10) 완성하였는데, 법장은 1426년(세종 8) 송광사에 돌아와 주석[선종(禪宗)에서 승려가 입산안주(入山安住)하는 일]하였다.
[사상과 저술]
법장의 저술로는 나옹화상의 삼종가(三種歌)인 「완주가(玩珠歌)」·「고골가(枯骨歌)」·「백납가(百衲歌)」에 찬송(讚頌)을 붙인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법장은 1428년 7월 21일 고당(古堂) 각웅선사(覺雄禪師)를 불러 임종게(臨終偈)[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를 쓰게 한 후 좌선(坐禪)한 채 입적하였다. 세수 78세, 법랍 58세였다. 유언으로 3년 뒤에 유해함(遺骸函)을 열어 보게 하였는데, 사리 37과가 나와 제자들이 송광사 감로암 뒤편에 승탑을 세웠다. 법장은 나라에서 임명하거나 추증한 국사가 아니었지만, 여말선초에 20여 년에 걸쳐 송광사를 중창한 공덕을 기려 송광사의 후학들이 추존한 명예 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