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419
한자 定慧寺大雄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
영어공식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in Daeungjeon Hall of Jeonghyesa Temple
영어음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in Daeungjeon Hall of Jeonghyesa Temple
영어공식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in Daeungjeon Hall of Jeonghyesa Temple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장모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25년연표보기 -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성
현 소장처 정혜사 대웅전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지도보기
원소재지 정혜사 대웅전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청소리 716]
성격 불상
재질 나무
크기(높이) 110㎝
소유자 정혜사
관리자 정혜사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형태]

정혜사의 정확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순천시 불우조에 계족산 하에 있고,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1226~1292]가 기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13세기에는 이미 정혜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대웅전 상량문에 임진왜란 시 소실되어 신욱(信旭) 비구가 1617년(광해군 9)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854년 보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동안 법등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대웅전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의 주존불이다. 협시인 관음과 세지보살은 1992년 도난을 당하여 최근에 새로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대좌에 “옹정(雍正) 삼년(參年) 을사(乙巳) 오월일(五月日) 불상(佛像) 삼존(三尊) 조성야(造成也) 화주(化士) 관인(寬印) 별좌(別座) 관흠(寬欽), 화공(畵工) 순민(順敏)”이라 기록되어 있어, 1725년 승려 관인이 화주가 되어 승려 순민이 아미타삼존상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나발은 굵고, 원통형의 정상 계주와 반원형의 중간계주를 표현하였다. 방형의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은 둥글며 양미간 사이에 백호(白毫)[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가 있다. 가는 눈, 오뚝한 코, 콧방울보다 약간 큰 입술이 묘사되어 있고, 양 볼은 약간의 풍만감을 주고 있어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볼과 턱 사이가 움푹 들어가 있어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입술 아래에는 턱선을 강조한 선각으로 인해 턱을 바짝 당긴 듯한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군의[허리에서 무릎 아래를 덮는 긴 치마 모양의 옷], 승기지, 대의[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승려의 옷]가 갖추어져 있는데, 가장 바깥에 입은 대의는 변형된 편단우견으로 착용하였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 걸쳤으며, 목 밑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늘어지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좌측 어깨 정측면에는 왼쪽 어깨로 넘겨진 대의 자락이 자연스럽게 어깨에서 무릎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승기지는 가슴 아래까지 올려 끈으로 묶어 도식화된 5개의 연판형 주름이 접혀있다. 수인은 미타정인으로 오른손은 검지와 약지·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하반신은 어깨와 비례하여 짧아 안정감을 잃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가 왼쪽 무릎 위에 올라와 있다. 다리 위에 조각된 옷 주름은 호형의 양각선으로 우측에 4줄, 좌측에 3줄이 비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하단은 물결무늬로 표현하였다. 소맷자락이 왼쪽 무릎을 완전히 덮어 연판형으로 처리하였다.

[특징]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전체 조각기법이 유려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 자비스러운 면을 풍기는 수작의 불상이다.

[의의와 평가]

정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에 정혜사에 봉안하기 위해 순민이 조성한 불상으로 조성 연대[1725년]와 조각승 화주 등을 알 수 있고, 불상의 조각적 특징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어 18세기 전반기의 전라남도 지역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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