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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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공식명칭 | Housing Life |
영어의미역 | Housing Life |
영어공식명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호현 |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주거 형태와 가옥의 특징
[전통 가옥의 현황]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에는 이름난 씨족마을이 많다. 승주조순탁가옥, 승주조승훈가옥, 조경한가옥 등처럼 잘 알려진 전통 가옥은 특정한 세거 성씨가 거주하는 씨족마을 안에 입지하고 있다. 또 씨족마을이 아니더라도 순천 낙안읍성과 같이 전체가 전통문화재 보존지구로 지정된 곳도 있다. 전통사회에서 생산활동을 포함하는 온전한 주생활이란 하나의 집안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마을을 단위로 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순천의 주생활과 전통 가옥의 특징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옥이 속해 있는 마을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원과 특징]
순천은 한반도 남쪽 끝 전라남도의 동부에 있으며, 마한과 백제의 옛터로서 일찍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순천의 주거시설은 역사적으로 일부 상류층을 제외한 영세 자영농 혹은 소작농의 가옥이 대부분이었으며, 규모도 작아 대개 3칸 막살이 초가를 기본으로 여기에 1칸을 덧붙인 정도였다. 순천 지역의 고온다습한 기후적 여건으로 인해 가옥의 구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마루구조, 즉 안청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을 기본으로 발전되었다. 대부분 남부형 민가와 같이 3칸, 4칸 홑집 유형이 표준인 것도 이러한 기후조건에 기인한 것이다.
전남 순천 지역의 주거는 시기적으로는 조선 후기의 주택들이 남아 있고, 계층적으로는 부농계층의 주거뿐만 아니라 낙안읍성의 초가와 같이 서민주거의 양상을 함께 볼 수 있다. 주거 형태상으로는 ‘一’자형 집이 주를 이루며 분산 배치되어 있고, 그 평면형은 대부분 전후로 툇간이 있는 전퇴와 후퇴집, 혹은 전후좌우로 모두 툇간이 있는 전후좌우 툇집의 구조이다. 순천에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집들은 겹집화 경향을 보이고도 한다. 전통주택에 있어서 툇간은 생활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건축 공간이다. 실내공간에서는 집의 일부분, 특히 마지막 칸을 전후로 양분하여 상방과 하방을 두는 집도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상, 하방을 두는 방식은 전통적인 주거건축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안채부의 생활공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내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겨난 변화이다. 이러한 겹집으로의 발전은 조선 후기에 들어 전후면 툇간에 대한 다양한 활용방식이 시도되다가 대체로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안채의 후면부, 혹은 상부의 다락 등을 이용해 밖에서는 알 수 없는 비밀의 수장공간을 만드는 것도 근대기 순천을 포함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는 풍부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곡식이나 재화의 비밀 수납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전통 가옥의 구조와 변천]
부농주택의 건물 배치방식에 있어서 경상북도 지역의 ‘ㅁ’자형 주택과 같이 집중형 배치가 아닌 ‘一’자형이나 ‘二’자형 배치와 같은 분산형의 배치방식은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살리고, 미세한 지세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대체로 전면에 사랑채를 두고 그 후면에 안체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좋은 방향을 차지하기 위해서 사랑채와 안채를 나란히 늘어놓는 방식도 발견된다. 이는 도식적인 배치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진입에서 방으로 이르는 사람의 움직임상의 선후 관계를 고려한 의식상의 배치원칙을 따르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채는 대부분 남향을 원칙으로 하되, 남서, 남동향도 더러 있다. 다만 동, 서, 북향은 거의 없다. 이는 대지의 형상에 적절히 맞추면서도 가장 유리한 일조와 통풍을 위한 방책이다. 그래서 대문도 안마당을 일직선 상의 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 남서, 남동쪽 모서리나, 서쪽, 동쪽에 대문을 내기도 하나 북쪽으로 낸 경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안채를 남향으로 대지 북단에 앉히고 대문을 남단에 냄으로써 안마당을 통해 모든 가내 동정이나 시설물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고자 함이다.
일반적으로 기단은 바닥의 습기를 피하려고 처마선을 따라 지표에서 되도록 높게 정지한다. 그러나 연중 강우량이 많고 고온다습한 지역이면서도 기단을 낮게 쌓는 경우가 많았다. 평지가 아닌 경사지로 뒤쪽이 더 높은 대지의 경우는 기단 높이를 뒤쪽에 맞춤으로써, 정면의 기단은 막돌 허튼층으로 그 위를 흙으로 덮어서 높게 쌓고 측면은 경사에 따라서 적절히 쌓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쌓은 기단 위에 기둥 밑뿌리를 받치기 위한 주춧돌도 상류주택에서는 원주 또는 방주 등의 형상에 맞춘 원형 혹은 방형의 가공 초석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가에서는 큰 막돌의 편평한 표면이 기둥뿌리에 맞게 놓은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가 일반적이었다. 기둥은 중규모의 주택이나 상류주택의 경우에는 주택의 얼굴에 해당되는 전퇴에만 가는 방주 등을 세우고, 전면과 후면에는 원목의 뒤틀림 생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까래나 대들보는 상류주택의 경우 각형 부연을 건 겹처마에 정교하게 치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옥에서는 원목 생김새대로 사용하고, 부연 없이 서까래만 건 홑처마를 사용했다. 특히 기둥, 보, 처마도리 등을 함께 결구하는 고급 건축의 주두나 공포를 짠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중규모 주택이나 상류주택의 경우 처마도리에 장여를 받쳐서 장여뺄목으로 주두의 기능을 대신하면서 보와 결구시키기도 했으나, 처마도리에 장여를 받치지 않고 초각 없는 보뺄목을 결구하는 민도리집이 일반적이었다.
벽체는 기둥의 상하로 인방을 걸고 문얼굴을 낸 다음, 나머지 부분에 외를 엮어서 진흙을 바르고 회로 마감하는 심벽을 주로 사용했으나 진흙으로 마감을 끝내기도 하였다. 부엌이나 안채에 부속된 공간 등의 상부 벽체를 판장벽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창호는 안방이나 작은방 등에는 거의 격자살 창호를 달았으며, 완자, 아자 또는 화창 등은 거의 시용하지 않았다. 특히 영세한 주택의 경우는 간단한 대나무 교창을 달기도 했다. 천장은 방의 경우 우물천장을 올리지만 안청이나 툇간 천정부분, 부엌과 안채에 부속된 곳간 등에는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킨 연등천장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붕은 거의 우진각 지붕틀에 볏짚을 이는 초가집이 사용되었다. 일부 상류주택이나 부농의 주택에서는 팔작지붕 위에 한식기와를 잇기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