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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달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886
한자 -說話-
이칭/별칭 호종단(胡宗旦),고종달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현승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10월 31일 - 「고종달 설화」 『한국구비문학대계 9-3』에 호종단(胡宗旦)으로 수록됨
관련 지명 지장시미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 서귀포시 서홍동 토산리
채록지 남원, 상효, 대포 - 서귀포시 남원읍, 영천동, 중문동
성격 전설|풍수담|단맥전설
주요 등장 인물 고종달|진시황
모티프 유형 도래 인물인 고종달이 제주의 물혈을 떠 제주에 큰 인물이 나지 않게 됨.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중국 진시황(秦始皇)이 보냈다는 고종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제주도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용천수가 나지 않는 마을은 외부 세력에 의해 단혈되었다고 해석한 것이 고종달 설화인 셈이다.

토산의 ‘거슨셈이’와 ‘단셈이’, 서귀읍 홍노(烘里)의 ‘셈이물’ 등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남아 있으며, 산방산용머리가 잘린 것은 고종달 때문이며, 용의 머리가 잘렸으니 서귀포시에서는 큰 인물이 날 수 없다고 자연 현상을 통해 아쉬움을 해석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고종달 설화」는 1982년 1월 28일 남원읍 하례1리 양남학[남 63세], 1981년 1월 23일 서귀포시 영천동 상효, 1981년 5월 9월 11일 중문동 대포 김재현[남 85]에게서 채집되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대계 9-3』에 호종단(胡宗旦), 고종달로 수록되었다.

또, 1975년 표선면 토산리 김봉구와 표선리 홍성흡[남 73세]에게서 채록되어 『제주도 전설』[현용준, 1976], 대정읍 보성리 강신생[남 76세]에게서 채록되어 『제주도 전설지』[제주도, 1985]에는 「고종달이」로 수록되었다.

[내용]

중국 진시황(秦始皇)이 제주에 큰 인물이 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고종달을 제주에 보내어 제주도의 혈맥을 끊도록 했다.

고종달은 먼저 구좌읍 종달리로 들어왔다. 먼저, 그는 물혈이 표시된 지리 문서를 들고 물혈을 찾아나섰다. 자신의 이름을 쓴다고 하여 종달리 물혈을 뜨고, 동으로 향하여 토산리 거슨샘이 혈을 뜨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서귀포 홍리 지장새미에 다다랐다. 지장새미 근처에서 밭 가는 농부에게 한 할머니가 살려 달라며 소길마 밑에 넣어둔 행기물에 들어가 숨었다.

고종달이가 지리문서에 나타난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소」라는 물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그가 갖고 있던 지리 문서를 찢어버렸다. 그 결과 서귀포시의 물혈을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산방산에 이르러 산방산을 끌고 바다로 향하는 용을 보고 그 혈을 끊어버렸는데 그 결과 서귀포시에서는 큰 인물이 나기 어렵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제주도는 풍수지리상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날 수 있어 중국의 진시황제는 고종달을 보내어 단맥하라 하였다. 그 결과 제주도를 빙 돌아가며 물혈을 단맥하였다. 전설이 전승민들이 살고 있는 곳의 자연을 설명하는 장르임을 고려하면, 제주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을 우려한 외부인인 진시황이 고종달을 보내 제주도의 물혈과 산방산용머리 혈을 떠 버림으로써 제주인이 중앙에 진출하여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설명하며,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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