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 형성된 인간 생활의 중요한 공간 역할을 하는 지형적 특성을 지닌 산간 침식 분지 지형.

[개설]

비행기를 타거나 주변의 산의 정상에 올라서 우리 국토를 내려다보면 좁은 지역에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들과 함께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산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반도는 국토의 70% 가량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요 거점 도시들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분지 도시로는 강원도 춘천, 양구 해안(亥安), 충청북도의 충주, 옥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등과 함께 거창의 거창 분지, 가조 분지 등이 있다. 이처럼 분지 내에 자리 잡은 도시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분지 내부의 평탄한 평야는 비옥한 토지와 인간 활동의 공간을 제공했으며, 도시를 둘러싼 산지는 아름다운 산과 계곡으로 풍류를 즐기는 재충전의 공간을 제공하면서 도시를 외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자연 장벽의 역할을 해 주었다.

이러한 분지 지형은 성인에 따라서 지구조 활동에 의해 형성된 구조 분지와 기반암의 차이로 인한 서로 다른 침식 속도로 인해 형성된 침식 분지(浸蝕盆地)로 구분 할 수 있다. 한반도에 발달하는 분지는 단층 활동 등과 같은 지구조 활동에 의해 형성된 구조 분지보다는 기반암의 차이와 같은 지질적인 조건과 지형적인 영향에 의해 형성된 침식 분지에 해당한다.

침식 분지는 서로 다른 기반암의 풍화 속도가 다르게 나타나므로 이로 인해 중앙부에 있는 기반암이 주변의 암석보다 빠른 속도로 침식되어 낮아져 분지를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편마암 지대에 화강암이 대규모로 관입하는 기반암 구조를 보이는 지역에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강암이 관입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형태가 분지의 형태를 이루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설악산, 치악산 등과 같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은 산지를 이루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따라서 반드시 화강암의 분포가 침식 분지를 형성하는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다른 지질적인 조건이나 하천의 유무, 하천과의 관계 등도 분지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조 분지의 형태와 분지 내 하안 단구]

경상남도 북서부 내륙에 위치한 거창군도 침식 분지 지형에 형성된 대표적인 도시이다. 거창군 일대에는 거창읍이 위치한 거창 분지, 가조면 일대의 가조 분지, 웅양면, 위천면 일대의 소규모의 침식 분지 지형이 잘 발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조 분지는 지역을 대표하는 분지를 넘어서 한반도 전체에서 보더라도 전형적인 분지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지형 자원이다. 항공 사진을 통해 전체적인 가조 분지의 형태를 보면 가천천이 분지 내로 유입하는 북쪽과 그 하천이 분지 내부를 흘러 빠져나가는 남쪽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 내부를 북에서 남동 방향으로 곡류하는 가천천은 가조 분지의 서쪽 산지로 치우쳐 곡류하며 가조면 기리 일대의 남쪽 산지 사이를 흘러 황강으로 유입된다.

가조 분지의 지형은 크게 5개의 지형 요소로 구분 될 수 있다. 먼저 분지의 가장 외측부는 분지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배후 산지이다. 분지의 북쪽은 시계 방향으로 가야산 의상봉[1,064.2m], 비계산[1,131m], 산재재를 거쳐 남쪽으로 두무산[1,034m], 두산지음재, 오도산[1,134m], 숙성산[899m]까지 산지가 이어져 있다. 분지의 서쪽은 북쪽부터 보해산[909m], 금귀산, 살피재, 박유산[712m]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체적으로 가조 분지의 북쪽, 동쪽, 남부의 산지가 분지의 서쪽 산지보다 고도가 높은 형태를 보인다. 이들 산지는 산정부에서는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분지 중앙부로 가면서 경사가 완만하게 낮아지는 산록 완사면을 이루고 있다. 산록 완사면에서는 산정부의 기반암에서 풍화된 암설이 중력에 의해 사면을 따라 굴러서 퇴적된 애추(talus)나 암괴원(block field)과 같은 사면 퇴적 지형이 나타난다. 산록 완사면의 말단에는 배후 산지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있거나 연결된 구릉이 선형으로 분포한다. 이 구릉은 분지 내부의 화강암이 침식되는 과정에서 남은 구릉이다. 이들 구릉 사이에는 개석곡이 선형으로 분포한다. 개석곡은 화강암 관입 이후 산지의 사면이 산지를 흐르는 계곡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식되어 형성된 지형면으로 현재에도 배후 산지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개석곡은 분지 중앙부로 가면서 고도가 더욱 낮아져 중앙부에서는 해발 고도 250~300m 내외의 평탄한 저지를 이룬다. 평탄한 저지는 크게 하안 단구 지형과 범람원 지형으로 구분된다. 하안 단구 지형은 과거 가천천의 범람원이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융기를 겪고 하천은 하도를 더 깊게 침식하여 형성한 계단 형태의 지형이다. 범람원은 약 1억 년 전 빙기가 끝난 이후 가조천이 범람하며 퇴적물을 퇴적시켜 형성한 지형이다. 가조면에 분포하는 하안 단구 지형은 피복형 완사면 및 구릉보다는 낮은 고도를 보이며, 현재 가조천의 범람원 지형보다는 높은 고도에 위치한다. 하안 단구와 범람원의 경계면은 단애를 이루는 경우도 있으며 현재의 하천과는 5~10m의 고도 차이가 나타나며 현재의 하천과는 상당히 떨어져서 나타난다.

[가조 분지의 형성 및 발달 과정]

경남 북서부 내륙에 위치한 거창군 가조 분지의 시작은 현재로부터 약 6억 년 이전의 선캄브리아기에서 출발한다. 선캄브리아기 동안에 유역 분지 내에서 사면을 따라 운반된 점토나 모래가 퇴적되어 덕유산층을 이루었고 이후 덕유산층은 높은 온도와 압력을 동반한 대규모의 광역 변성 작용에 의해 편마암류의 변성암으로 형성되었다. 중생대 백악기 이전까지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섬록암질암과 해인사 화강암이 관입하였으며 현재의 가야산 일대의 산지는 이때 관입한 해인사 화강암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중생대 백악기에 들어서는 현재의 거창군 중앙부 일대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편마암 지대를 뚫고 대규모로 관입한다. 현재 거창 및 가조 분지 중앙의 평탄면을 이루고 있는 기반암은 대부분 이 시기에 관입한 기반암이다. 이때 화강암이 관입하면서 기존의 거창 지역에 있던 기반암은 열 접촉 변질에 의해 풍화 및 침식에 대한 저항이 강해졌고 이에 비해 관입한 화강암은 상대적으로 풍화 및 침식에 대한 저항이 약하다. 따라서 이러한 풍화에 대한 저항성의 차이로 인하여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에서 화강암은 편마암이나 열 접촉 변질이 된 기존의 암석보다 빠른 속도로 지속적인 침식을 받아 차별 침식이 이루어졌다. 즉, 현재 가조 분지 중앙부의 화강암은 쉽게 개석되고 분지 내를 흐르는 가천천 및 지류 하천에 의해 침식 및 운반되어서 분지저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하여 주변 산지는 침식에 상대적으로 강하여 현재에도 높은 산지로 남아 있게 되었다. 가조 분지가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신생대 제3기 말로 추정이 된다.

이처럼 한반도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침식 분지인 가조 분지는 기반암의 차이에 의한 차별 침식뿐만 아니라 가조 분지 내를 흐르는 하천, 그리고 수억 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낸 자연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조 분지 내 인간의 거주 및 활동]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이 빚어낸 가조 분지는 긴 역사처럼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 공간 역할을 해 왔다. 현재 가조 분지 내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인간 거주의 흔적은 상마 고인돌, 창촌 고인돌, 왕대 고인돌, 생초 고인돌 등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 유적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재에 비해 선사 시대에 인간의 삶은 자연 환경에 더욱 직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이러한 분지 지형은 인간이 거주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렵, 채집 생활의 기초적인 사회에서 가조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배후 산지는 산세가 깊고 넓어서 풍부한 식량 자원의 보고(寶庫)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철에는 차가운 북서 계절풍도 막아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생존을 위해 ‘물’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역 분지 내에 내린 물은 자연스럽게 분지 중앙부로 모두 모여 가천천을 통해 분지 남쪽으로 배수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가조 분지의 지형적인 특성은 선사 시대의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재 가조 분지 내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지는 청동기 시대이나 인근의 거창 분지 내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까지 확인되었으므로 가조 분지에서도 더욱 오래전부터 인간이 거주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선사 시대를 지나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조 분지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삼국 시대에 거창 일대는 가야, 신라, 백제의 국경 지대였으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의 역사가 곳곳에 있었다. 현재 거창 일대에 있는 거열성(居列城)[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 분산성(盆山城)[일명 성산성(城山城)], 가북면의 황사산성(黃沙山城)을 비롯한 여러 성터의 흔적은 거창 지역이 전쟁을 통해 반드시 차지해야 될 만큼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산지가 발달한 내륙에서 분지는 거주 공간으로서 차지하는 가치가 크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환경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현대에도 가조 분지에서는 분지 지형의 특성을 이용한 토지 이용 패턴이 잘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가조 분지의 취락은 산록 완사면의 말단부나 완사면과 평야가 만나는 경사 급변점, 구릉 사이의 개석곡에 주로 분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물을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분지의 산지가 계절풍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의 완만한 구릉이나 완사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개간하면 쉽게 경작지로 이용할 수 있다.

가조 분지의 토지 이용을 살펴보면 분지 중앙부의 범람원 및 하안 단구 지형은 물을 구하기 쉽고 토양이 비옥하므로 대부분 벼농사로 이용되고 있다. 반면 산록 완사면 및 구릉은 토양의 물 빠짐이 좋고 비탈진 사면이므로 벼농사보다는 밭농사와 과수원으로 이용된다. 특히 거창 지역의 구릉 및 산록 완사면은 해발 고도 300~500m에 위치하여 기온이 선선하고 일조 시간이 충분하여 과수 농업에 적합하다. 최근에는 여가 및 관광에 대한 수요가 늘고 도로 교통을 통한 인근 도시에서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가조 분지 일대의 산과 계곡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분지 내 산록 완사면이나 구릉지에 골프장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분지 지형면의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조 분지의 미래]

가조 분지는 경남 북서부의 산간 내륙에 자리 잡은 침식 분지 지형으로 중생대 백악기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자연이 깎아 낸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조 분지는 지형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학술적인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조 분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더없이 좋은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이 시간에도 우리가 직접적으로 변화를 느낄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가조 분지의 산지는 지속적으로 침식되어 낮아지고, 침식된 토양은 사면 및 하천을 따라 운반되어 분지의 낮은 부분을 퇴적시키고 있다. 이 기본적인 침식과 퇴적의 메커니즘은 지표의 높고 낮은 기복이 완전한 평형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지형면의 개석(開析) 및 변화 속도는 적극적인 인간 활동의 영향에 의해 속도가 더욱 가속될 수도 있고 완화될 수도 있다.

가조 분지는 서쪽으로는 거창읍과 산지로 가로막혀 있고, 인근의 대도시 권역과도 물리적으로 충분히 떨어져 있어 현재까지는 비교적 자연환경이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연 속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름난 산과 계곡 등 천혜의 자연을 갖추고 있는 거창 및 가조 분지 일대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 도로가 확장 개통을 하면서 접근성 또한 크게 개선되어 더욱 많은 사람이 방문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회적인 수요의 증가는 가조 분지 일대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광주 대구 고속 도로는 가조 분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산지를 터널로 지나고 있어 막대한 규모의 자연 파괴를 초래하였다. 또한 분지 남쪽의 두무산 및 오도산의 산록 완사면에는 대규모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어서 인간 생활의 주 무대가 되었던 산록 완사면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골프장 건설을 위한 삼림의 제거는 사면에서 토양 침식을 가속화하고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온다. 또한 가조 분지의 산지를 찾고 있는 등산객들로 인하여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난 등산, 생태계 파괴, 토양 침식 등의 문제도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자연환경에 대한 적절한 모니터링과 삼림 조성 및 보전 사업을 통하여 가조 분지의 지형을 보호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자연 자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광에서 분지 내에 분포하는 인문 역사 유적 자원을 정리하고 이를 잘 조화시킨다면 가조 분지를 터전으로 살아온 인간의 생활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