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22
한자 張應獜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장응린 사망
성격 의병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 의병.

[가계]

장응린(張應獜)[?~1592] 가계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경운(鄭慶雲)이 쓴 『고대일록(孤臺日錄)』에서는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의병을 모집할 때, 동생인 장응사(張應獅)와 함께 의병에 참가하였다는 기록과 모계(茅谿) 문위(文緯)『모계집(茅谿集)』에서 장응사가 정유(丁酉)년에 일어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어 동생 장응사는 확인이 되지만 나머지 가족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활동 사항]

장응린은 거창에서 태어났다. 언제 태어났으며, 부모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1592년(선조 25)에 의병장 김면이 의병을 모집할 때, 동생 장응사와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응린은 용감하며, 활과 무기를 잘 다루었으며, 의병에 참가한 다음에도 힘을 다해 종군하여 조금도 태만함이 없었다고 한다. 김면 휘하에 들어가서 군관(軍官)을 맡아 여러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1592년 7월 20일에 김천 지례(知禮)에서 우현(牛峴)을 넘으려는 왜적을 상대로 두곡역(豆谷驛) 앞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였다. 장응린이 죽자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였으며,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이 소식을 듣고 상심하여 부물(賻物)[상장(喪葬)에 부의(賻儀)로 주는 물건]을 전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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