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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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滎振 |
이칭/별칭 | 여기(汝起),평암(平巖)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672년 - 정형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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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28년 - 정형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46년 - 정형진 영빈 서원 배향 |
출생지 | 정형진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거주|이주지 | 정형진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사당|배향지 | 영빈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동래(東萊)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가계]
정형진(鄭滎振)[1672~1728]의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여기(汝起), 호는 평암(平巖)이다. 아버지는 정시좌(鄭時佐)이며, 어머니는 별제(別提) 김연(金延)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부인은 신석문(辛碩文)의 딸 영산신씨(靈山辛氏)이다.
[활동 사항]
정형진은 1672년(현종 13)에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일찍이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다가 1708년(숙종 34) 아버지상을 당한 뒤로 과거를 단념하고 평암(平巖)이라는 바위에 집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형진은 경학을 비롯하여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고, 천문·역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늘 정성과 공경한 마음으로 수양하였으며, 어느 한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1728년(영조 4) 암행어사 이종성(李宗城)이 정형진의 학행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예로써 인사한 일이 있었다. 1841년(헌종 7)에 장락원 정(掌樂院正)에 증직되었다.
[학문과 저술]
정형진이 편한 책은 『심학 전결(心學傳訣)』·『심경속록(心經續錄)』·『예설집록(禮說集錄)』·『절요집람(節要集覽)』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는 『평암집(平巖集)』 5권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정형진은 1846년(헌종 12)에 영빈 서원(瀯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