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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실마을 주민들의 삶과 승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B020302
한자 - 住民- 承湖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호상

[정의]

씩실마을 주민들의 삶과 승호

〔마을주민과 함께한 승호〕

삼리 1리 씩실마을에는 낙동강이 만든 승호(承湖)가 있다. 이웃 금포천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승호를 지나 위천 쪽의 낫늪을 통해 낙동강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이름을 승호라 하였다. 또는 마을이름을 빌려 ‘씩늪’이라고도 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승호는 젖줄기와 같았다고 한다. 식수로 쓰기도 하고, 농사철에는 인근 밭에 물을 댈 수 있는 요긴한 존재였다.

“1970년대 까지는 이 물을 우리가 먹었어요. 6.25사변 전에는 다리가 없고 해서 밭에서 일하다 집에 가기는 그렇게 날은 덥고 하니 이 늪의 물을 먹었어요. 우물 물이 부족하마 늪의 물을 떠서 먹었지요.,

들에서 일하다가 목이 마르면 저기 수초 많은 부분에 들어가서 물을 먹기도 했지. 여름에는 늪에서 목욕을 많이 했지요. 저기 마을 쪽으로 얕은 곳은 빨래터였고, 밤에는 부녀들이 와서 목욕도 하고... 좀 더 얕은 데는 애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위쪽으로 나무 있는 데는 어른 들이 목욕하는 곳이었어,..”(이달우, 남, 80세)

승호의 길이가 1.35km나 되었는데도 다리가 없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들에 일을 하러 다니기가 불편해서 처음에는 나무다리를 만들었다. 마을 앞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간이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이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 당시 첫 사업으로 승호교를 건설하였다. 이후 여러 번의 개축과정을 거쳐 2012년에 지금의 다리를 완공하였다.

〔대구 인근 낚시터로도 유명했던 승호〕

낙동강에 제방이 생기기 전에는 홍수가 나서 강물이 범람하면 마을까지 물이 들어 와서 강하고 늪의 구분이 없어져 버릴 정도였다. 물이 빠지면 들이 다시 드러나고, 홍수 덕에 늪의 물이 가득차면서 물고기도 많아 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조개도 많았고 고디(다슬기)도 많았는데, 얼마나 많았는가 하면 대구시내서 짐을 실어 나르는 큰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한 포대기를 잡아 가는데 말이지. 누구는 망을 가지고 와서 바닥을 긁어 가면서 잡아가는 기라.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잘 안 잡았어. 고기가 길바닥에 떨어져 꿈틀하고 살아 있으면 잡아가지만 물에 들어가서 잡은 사람은 없었어요. 가물치나 잉어를 잡아 가는 사람도 있었지. 대구 사람들이 와서 잡아가도 그 사람들 재주 좋다고 이야기하지 섭섭해 하고 그러지는 안했어요.(이달지, 남 80세)

마을에서는 도의 지원을 받아 한때 양어장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낚시터로 유명해지니 대구에서 와서 낚시 대회가 개최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농사짓는데 방해가 되고, 또 농작물에도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하자 양어장을 폐쇄하였다. 그리고 들판에 경지 정리를 하면서 양수장을 설치해서 농업용수로 공급하다 보니 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6.25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승호〕

6.25 전쟁 초기 가장 중요한 전투였던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삼리 1리였다. 당시 대구 쪽으로 진격을 노리던 북한군이 강의 폭이 좁은 씩실마을 쪽으로 침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승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북한군은 늪에 빠져 죽기도 하였고, 마을에 주둔해 있던 미군의 공격을 받아 물러 갈 수 밖에 없었다.

“늪이 낙동강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한기라 늪이 이상하게 생겨서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오려면 이 늪을 건너야 되는데, 강에서 마을 쪽은 1m 만 들어와도 절벽이라 근데 반대편 마을에서 늪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완만하게 되어 있는 구조라 강쪽으로는 수초가 빽빽하게 있었는데 그 키가 어른 키만큼 컸어. 그래서 북한군들이 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오려다가 보니 늪이 있기는 한데 깊이고 넓이고 잘 몰랐겠지. 밤이고 해서 뭐 도랑 같은 걸로 착각했겠지, 그런 데를 완전무장해서 건너다 그만 다 빠져 죽어 버린 거라. 밤이라서 마을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하다 보니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죽어 간기지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이달지, 남 80세)

승호에 덤떵(뚱뚱)바우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도 바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이 깊어 명주실을 풀면 끝없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승호는 삼리1리 씩실마을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젖줄기와 같은 존재였다.

〔참고문헌〕

천미연, 『범람원에 형성된 호소형 습지에 관한 연구』 (대구대 석사, 2007)

〔정보제공자〕

이달우(남, 1937년생,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노인회 회장)

이달지(남, 1937년생,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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