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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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恩希 |
영어공식명칭 | Bae Eunhui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정치인이자 목회자.
[활동 사항]
배은희(裵恩希)[1888∼1981]는 1888년에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평양 신학 전문학교 재학 중에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1년 전주 서문 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호남 지방 최초의 유치원인 전주 유치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민족 협동 전선 운동으로 전개된 신간회 전주 지회의 설립에 참여하였고, 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9년에는 복음 전도단을 결성하여 농촌 교회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전시 체제기에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장로교 교단이 신사 참배를 결의하고 목회자들이 창씨개명을 강제했을 때, 신사 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목회 활동을 중단하였다.
배은희는 8·15 광복 후인 1945년 전라북도 치안 대책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뛰어들었고, 신탁 통치 반대 투쟁 위원회 경상북도 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1946년 2월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대회 의장이 되었고, 여기서 전라북도 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헌 국회 의원 선거에서 전라북도 전주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48년 11월 신익희 등과 대한 국민당을 창당하고 최고 위원으로 지명되었다. 1949년 8월에는 민족 진영 강화 위원회를 발족시켰고, 6·25 전쟁 중인 1951년 6월에는 구국 총력 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52년 2월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보궐 선거에서 대한 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뒤 자유당의 원내 대표, 국민 부장, 경상남도 위원장을 지내면서 자유당의 주요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1954년 5월 제3대 국회 의원 선거 때 자유당 후보로 달성군 선거구에서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다. 1956년 장택상, 이범석 등과 함께 공화당의 최고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뒤 정계를 은퇴하였다. 배은희는 1981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배은희의 저서로 1955년 일한 도서 주식회사에서 출간한 『나는 왜 싸웠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4월 전주 서문 교회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에 위치한 다가 공원에 배은희 기념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