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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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潤仁 |
영어공식명칭 | Kim Yunin |
이칭/별칭 | 의가(義可),둔계(遯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 정착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의가(義可), 호는 둔계(遯溪). 월성 부원군(月城府院君) 김천서(金天瑞)의 9세손,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세민(金世敏)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김현(金賢)이다.
[활동 사항]
김윤인(金潤仁)은 조선명종(明宗) 연간 문신으로 활동하였으며, 딸이 왕의 후궁(後宮)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왕이 특별히 한양의 이현궁(梨峴宮)을 하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란을 피하여 경상도 현풍현 금산(琴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으로 이주하였다. 영달(榮達)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서 어진 인사들과 교유하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34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에 김윤인의 재실인 추모재(追慕齋)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