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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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鐵堅 |
영어공식명칭 | Lee Cheol Gyeon |
이칭/별칭 | 연부(鍊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달성 지역에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연부(鍊夫). 증조할아버지는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지내고 이조 참의에 증직된 이원보(李元普)이며, 할아버지는 전농 판관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증직된 이승(李昇)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판 이연손(李延孫)이며, 어머니는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세조의 정비인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언니이다. 첫 번째 부인은 생원 윤자렴(尹子濂)의 딸 무송 윤씨(茂松尹氏)로, 딸이 후에 강서 현령 허효순(許孝舜)에게 출가하였다. 두 번째 부인은 현감 이영상(李永祥)의 딸 평창 이씨(平昌李氏)이다. 아들을 한 명 낳았는데 이성정(李成楨)으로 종친부 전부(典簿)였다. 첩이 낳은 아들 이윤정(李允楨)은 대호군이 되었으며, 그 외 첩 소생으로 이안정(李安楨), 이익정(李益楨), 이극정(李克楨)이 있다.
[활동 사항]
이철견(李鐵堅)[1435~1496]은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의 이철견 졸기에 의하면 문음(門蔭)으로 헌릉직(獻陵直)을 거쳐 한성부 판관으로 있을 때인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고, 1466년(세조 12) 등준시(登俊試)에 합격하여 이듬해에 훈련원 도정이 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 후에 평안도 절도사가 되고, 성종 즉위 후인 1470년(성종 1)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하여졌다. 이어 경기도 관찰사, 형조·호조의 판서를 거쳐 1480년(성종 11)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이어서 좌참찬·경상도관찰사·대사헌을 지냈다. 1484년(성종 15) 한성부 판윤으로 사민안접 순찰사(徙民安接巡察使)를 겸하여 사민 정책을 주관하였다. 1486년(성종 17) 좌찬성이 되고, 이어 판의금부사, 평안도·영안도(永安道)의 도체찰사,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493년(성종 24) 척신으로서 탐학하고 사치를 좋아하며 전횡이 심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연산군 즉위 후인 1495년(연산군 1) 지의금부사에 복직되었다.
[묘소]
묘는 원래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723번지에 있었다. 1969년 서울특별시 도시 계획에 따라 신도비와 함께 대구광역시 옥포읍 교항리 2963[구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강림리 731-1]로 이전하였다. 이후 2006년 03월에 묘소만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남리 산 120-1번지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이철견신도비(李鐵堅神道碑)는 원래 1497년(연산군 3) 8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723번지에 세워졌다. 신도비의 비명은 홍귀달(洪貴達)이 지었다. 1969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이철견신도비는 경주 이씨(慶州李氏) 양평공파 묘역이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2963 (돌미로 58)로 옮겨졌다. 이철견 후손의 일부가 조선 후기 대구와 달성 일대로 내려와 정착하여 이철견신도비가 옮겨 올 수 있었다. 이철견신도비는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