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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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珍 傳 |
영어공식명칭 | Lee Dongjin Je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정의]
근대 개항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에서 살았던 유학자 조긍섭이 이동진을 입전하여 지은 전 문학.
[개설]
「이동진 전(李東珍 傳)」의 저자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이다. 아버지는 조병의(曺柄義)이다.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생하였지만 오랜 기간 대구의 비슬산에서 거처하였다. 조긍섭은 일정한 스승은 없었지만 타고난 성품이 영특하여 스스로 일가의 학문을 이루었고, 시문에도 법도가 있어 당시 영남 사림에서 거목으로 지목되었다. 곽종석(郭鍾錫)[1846~1919], 장복추(張福樞)[1815~1900], 김흥락(金興洛)[1827~1899], 황현(黃玹)[1855~1910], 김택영(金澤榮)[1850~1927], 이건창(李建昌)[1852~1898]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암서집(巖棲集)』, 『심재집(深齋集)』, 『조명록(措明錄)』 등이 있다.
이동진(李東珍)[1836~1905]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사직(士直)이며, 호는 금남(錦南)이다. 아버지는 이증열(李曾悅)이고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어머니와 매우 어렵게 살았으나 이자 붙는 돈을 불려서 재산을 쌓았다. 모은 재산으로 논밭을 넓게 사들여 족친과 지방민을 구휼하였다. 우현서루(友弦書樓)를 건립한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아버지이자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의 할아버지이다.
[구성]
「이동진 전」은 조긍섭이 지은 사전(私傳)이다. 금남 이동진의 사적을 기록하고 글의 마지막에 찬(贊)을 더하였다.
[내용]
「이동진 전」은 이동진의 대표적 사적을 제시하여 이동진의 인물됨을 드러내었다. 가난한 이동진이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와 재산 형성 과정, 족친에 대한 구휼, 매관(買官)을 거부하고 마을 호포(戶布)를 대납하는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이동진의 성품과 덕업(德業)을 드러내었다. 찬(贊)에는 평생 구휼에 힘썼던 이동진을 범문정(范文正)의 의장(義庄)에 견주어 칭송하였다.
[특징]
「이동진 전」은 이동진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제시하는 전(傳)의 정체(正體) 형식이다.
[의의와 평가]
「이동진 전」에는 이동진의 성품과 평생 사적을 알 수 있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동진의 행적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조긍섭은 이동진이 족친을 구휼한 일에 대하여 정확한 수치를 드러내어 구휼의 실체를 증명하였다. 또한 매관을 거부하고 호포를 대납하는 에피소드는 관련 인물을 등장시키고 인물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꾸며 낸 일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의론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그대로 보여 주어 내용의 객관성을 보장한 것이다. 근대 대구 지역 ‘전’ 양식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