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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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太師 全以甲 殉節碑 |
영어공식명칭 | Goryeotaesa Jeonigap Sunjeolbi[Goryeo Gaegukgongsin Taesa Chungnyeolgong Jeonigap Sunjeolbi] |
이칭/별칭 | 고려 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 순절비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의 순절비.
[개설]
고려태사 전이갑 순절비(高麗太師 全以甲 殉節碑)[고려 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 순절비(高麗 開國功臣 太師 忠烈公 全以甲 殉節碑)]는 팔공산 동수(桐藪)전투에서 순절한 충렬공(忠烈公) 전이갑(全以甲)[?~927]과 충간공(忠康公) 전의갑(全義甲)[?~927] 형제를 기리고자 1990년에 옥산전씨 전국종친회(玉山全氏 全國宗親會)에서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927년(태조 10)에 신라를 구원하고자 정병 5,000명을 거느리고 경주로 가던 중 팔공산 동수 지역에서 견훤(甄萱)의 군사를 만나 전투를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때 신숭겸(申崇謙) 장군이 태조의 옷으로 갈아입고 전사하였으며 태조는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김락(金洛), 전이갑, 전의갑 장군도 함께 전사하였다. 태조는 이들이 전사한 곳에 지묘사(智妙寺)를 건립하여 명복을 빌게 하였고 후에 그곳에 표충사(表忠祠)를 건립하여 신숭겸을 봉안하였다. 강원도 정선 출신의 전이갑·전의갑 형제의 배향은 1692년(숙종 18)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에 도계서원(道溪書院)을 건립하여 이루어졌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9년(고종6) 서원이 훼철되었다. 한편, 1800년에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전씨 형재를 기리는 재실인 도남재(道南齋)를 건립하였고 1838년 전씨 형제의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에 한천서원(寒泉書院)을 건립하여 제사를 지냈다. 전씨 형제들이 전사한 팔공산에는 기릴 만한 기념물이 없어 1990년에 순절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고려태사 전이갑 순절비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집단시설지구 공원관리사무소 앞에 있다.
[형태]
고려태사 전이갑 순절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가 있으며 재질은 오석이다. 비신은 높이 300㎝, 너비 103㎝, 두께 75㎝의 크기이다.
[금석문]
고려태사 전이갑 순절비의 전면에는 ‘고려개국공신태사충렬공전이갑순절비’라는 비제가 한자로 적혀 있고, 비문에는 비의 주인공인 전이갑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추모의 뜻 등을 국한문 혼용으로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태사 전이갑 순절비는 전이갑·전의갑 형제가 고려를 건국하는 데에 세운 공로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