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골의 풀무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76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시대 시대 미상
집필자 김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풀무골의 풀무바위」 『변산의 얼』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풀무골의 풀무바위」 『전설지 전라북도 편』에 수록
관련 지명 풀무골과 풀무바위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석하마을지도보기
채록지 복룡 마을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지도보기
성격 전설|효행담|암석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대장장이|딸
모티프 유형 효성|지명 유래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석하마을에서 풀무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풀무골의 풀무바위」는 대장장이 부친을 병구완하다가 죽은 딸의 효행 이야기이자, 부녀가 죽고 난 뒤 대장간 주변에 풀무 모양의 바위가 솟았다는 암석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부안군에서 편찬한 『변산의 얼』의 256~257쪽에 「풀무골의 풀무바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는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복룡마을 주민 임찬중[남, 70세]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90년 전라북도에서 펴낸 『전설지』의 539~540쪽에도 재수록되어 있다.

[내용]

1300여 년 전 통일 신라 초기에 부안군 하서면 서해안 일대는 매우 번창해서 큰 저자거리가 있었고 납치장이 있었으며, 아래돌마리와 신근정이 근처에 일제 말까지 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번화한 마을을 배경으로 아래돌마리 입구에 대장장이 아버지와 효성 깊은 딸이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대장장이가 살고 있어서 이곳을 ‘풀무골’이라고 불렀다. 대장장이 부녀는 하루하루 근근이 살았는데 어느 추운 겨울 날, 대장장이 아버지가 병에 걸려 몸져누웠다. 딸이 연약한 몸으로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간호하다가 고달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아버지를 부르며 죽었다. 대장장이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있다가 딸이 죽어가며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기어 나와 딸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마을 사람들이 부녀를 장사 치러 주었다. 그 후 부녀의 대장간 풀무 옆에서 큰 바위가 솟아나더니 풀무 모양으로 커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가 죽은 딸의 영혼이라 여기고 제사를 지내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풀무바위’라고 불렀다.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금도 축원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풀무골의 풀무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효성’, ‘지명 유래’ 등이다. 부모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 꽃이나 바위로 변하는 효녀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병에 쓸 약초를 구하러 산에 갔다가 죽게 되었는데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는 쑥부쟁이 전설 등이 그 예이다. 「풀무골의 풀무바위」도 쑥부쟁이 전설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바위로 변하는 효녀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풀무골의 풀무바위」에서는 효녀와 아버지가 죽고 난 뒤 대장간 주변에 바위가 솟고 그 바위가 풀무 모양으로 변한 것이 이색적이다. 효녀는 아버지 대신 대장장이 일을 힘겹게 하며 아버지를 병구완하다가 죽었는데 바위의 풀무 모양은 효녀의 힘든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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