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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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宗 |
영어공식명칭 | Gim Jong |
이칭/별칭 | 매죽당(梅竹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가계]
김종(金宗)[1471~1538]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縣監) 김숙손(金淑孫)이다.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김직손(金直孫)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김종은 1489년(성종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화(士禍)를 목격하고는 문과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여 3년을 시묘(侍墓)하였다. 아버지의 상에서도 어머니 상 때와 똑같이 하여, 비록 춥거나 덥다 할지라도 의대(衣帶)를 벗지 않았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몸가짐을 항상 반듯하게 하였다. 대사성(大司成) 김식(金湜)이 천거하였는데 그 천목(薦目)에 이르기를 “조리(操履)가 독실(篤實)하고 선(善)을 따름이 마치 흐르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김종은 일찍이 자신의 집 뜰에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심었는데 그 고결함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매죽(梅竹)’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조정에서는 김종을 높이어 “우리나라에 군자는 오직 김종 뿐이다”라고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