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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285
한자 月溪里
영어공식명칭 Wol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홍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마리면 월계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6.69㎢
가구수 125세대
인구[남/여] 254명[남자 114명, 여자 140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월계리(月溪里)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월화리·영신리·학동리·성락리의 4개 행정리와 월화·영신·학동·성락·토점의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월계’는 월화(月華)의 월(月) 자와 월화, 학동, 토점에서 동쪽의 위천천에 흘러 들어가는 월화천, 학동천, 토점천을 일컫는 시내 계(溪)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월화는 1601년에 월담(月潭) 이정기(李珽期)가 남하 지산에서 아랫담에 옮겨 와서 호 월담에서 ‘월’을 따고, 빛날 ‘화’ 자를 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영신(迎新)은 400여 년 전 하빈 이씨이정기가 옮겨 와서 ‘새터’라 부르다가 영승으로 가던 퇴계 이황을 여기서 처음 영접했다는 뜻에서 ‘영신’이라 하였다 한다. 학동(學同)은 마을 서쪽 300미터에 있는 산[시루봉]에 흰 바위가 있어 백암(白岩)이라 하다가, 서당골에서 글공부를 하였기에 ‘학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일제 때에 배움골이 배암골, 즉 사동(蛇同)으로 불리던 것을 1992년 ‘학동’으로 바꾸었다. 정선 전씨영승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성락은 옛날 별똥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위천천이 이 마을 터로 흐른 곳에 소(沼)가 있었고, 별이 떨어진 소라는 뜻으로 별락소·벼락소라 부르다가 ‘성락’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토점은 옛날에는 ‘작은 등골[小登谷]’이라 하였는데 1670년대에 옹기를 굽는 가마가 생겨서 ‘옹기골’이라 하다가 ‘토점’으로 바꿨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안의군 동리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화동과 영승동, 사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월계리라 하여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 편입되었다.

영신 마을에는 1948년까지 마리면사무소가 있었고, 일제 때 거창 경찰서 마리면 주재소도 이 마을에 있었다. 1948년 1월 12일 월계리 영신 마을에 있던 마리면사무소거창군 마리면 말흘리 지동 마을로 이전하였다.

[자연환경]

월계리기백산에서 동북동 방향의 능선에 솟아 있는 오두산(烏頭山)과 위천천 사이의 남동쪽 골짜기의 해발 고도 230~28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월계리의 북쪽은 오두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을 경계로 위천면과 구분되며 동쪽은 위천천을 경계로 영승리와 구분된다. 위천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영승리월계리 사이에는 영승들·월계들로 불리는 소규모 곡저 평야가 자리한다.

[현황]

2016년 4월 30일 현재 면적은 6.69㎢이며, 총 125세대에 254명[남자 114명, 여자 140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로 벼농사를 짓고 시설 재배를 통해 딸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정각인 염수정과 팔계 정씨 정려, 전택안 정려, 동래 정씨 정려, 파평 윤씨 행적비 등의 충효비, 우수재, 불이재, 치경재, 월담재 등의 재실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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