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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사 은행나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28
한자 演水寺銀杏-
영어공식명칭 Yeunsusa Eyunheng Tre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원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6년 7월 21일 - 「연수사 은행나무」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연수사 은행나무」, 『거창군사』에 수록
관련 지명 연수사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40-1 지도보기
채록지 「연수사 은행나무」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송변리 송변 마을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어머니와 아들|승려|보살
모티프 유형 효자 아들과 자상한 어머니의 이별과 상봉 이야기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연수사에 있는 은행나무와 전나무에 얽힌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에 있는 연수사에는 수령 1,000여 년 된 은행나무와 전나무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이 두 나무에는 어느 어머니와 효성 깊은 아들의 이별에 얽힌 슬픈 사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려 시대에 왕족과 혼인하였으나 무신의 난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유복자를 데리고 연수사에 와서 부처에 귀의한 보살이 있었다. 유복자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효성도 지극하였는데, 어느 날 한 노승이 찾아와 데려가 훌륭한 인물을 만들 터이니 아들을 맡겨 달라고 하였다. 어머니를 염려한 아들은 떠나기 전에 전나무 한 그루를 심어 어머니를 위로하였고, 보살은 은행나무를 심어 놓았다. 두 모자의 뒷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으나 지금도 은행나무는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있으며, 전나무 또한 푸르고 곧게 자라고 잎이 청청하였으나 해방 이후 어느 해 강풍에 부러지고 말았다.

[채록/수집 상황]

「연수사 은행나무」 이야기는 1976년 7월 21일에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송변리 송변 마을에서 염인섭에게서 채록했다. 연수사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은 『거창의 전설』, 『거창군사』 등에 실려 있고 내용도 거의 동일하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로 지정된 연수사 은행나무는 대웅전 앞뜰에 있으며, 높이 38m의 수나무다.

[내용]

무촌리연수사 앞에는 1,000여 년이나 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와 전나무 한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이 두 나무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눈물 어린 사연이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 때 연수사에는 보살 한 명이 있었다. 이 보살은 원래 사대부 집안의 규수로서 왕족에게 혼인을 하였으나 남편이 무신의 난 때 죽고, 문중이 몰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어 유복자를 데리고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에 귀의하였다. 보살의 아들은 자라나면서 머리가 총명하고 효성도 지극하였다. 어느 날 이 절에 한 노승이 찾아와 며칠 머물면서 아이를 유심히 살피더니, 떠날 때가 되자 보살에게 "이 아이는 앞으로 귀히 될 상이라 이 절에서 썩히기 아깝습니다. 소승이 데려가 그 재질을 갈고닦아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 터이니 소승에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보살은 깜짝 놀라, "아니 되옵니다. 제가 비록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불문에 들어와 자식에게 연연함은 마땅치 않으나, 내 생명같이 여기는 자식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님께서 자식과의 연을 멀리하게 하려 하시니 되지 않을 일이옵니다." 하고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노승의 권유에 보살은 밤새 염불을 올리면서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 뜻에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그러고는 그 뜻을 아들에게 이야기하고는 아들을 부둥켜 안고는 슬피 울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는 "어머니, 너무 슬퍼 마십시오, 오늘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10년이 되든 20년이 되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를 찾아오겠습니다." 하고 오히려 보살을 위로했다.

날이 밝아 노승과 아들은 절을 떠나게 되었다. 보살이 마음이 너무나 슬퍼서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하려 하니 아들이 "어머니, 울지 마십시오. 저는 높고 푸른 뜻을 품고 어머니 곁을 떠납니다. 이곳에 어머니를 위해 전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았습니다. 이 나무가 사시사철 청청하게 꿋꿋이 자랄 것이오니 저를 보듯이 보아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하여 어머님을 뵙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보살도 "오냐.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오너라. 나도 앞뜰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을 터이니 네가 성공하여 돌아와서 내가 없더라도 이 은행나무를 나 본 듯이 반겨라."라고 했다.

그런 이별이 있은 후, 두 모자의 뒷 이야기는 전하여지지 않으나 지금도 은행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뻗어 항상 잎을 드리우고 있다. 전나무 또한 푸르고 곧게 자라 청청한 잎들을 춘하추동 드리웠는데, 해방 이후 어느 해에 강풍에 못 이겨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1894~1956]가 서거했을 때 천둥과 번개가 치고 강풍이 몰아쳐서 이 전나무가 부러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무촌리 연수사의 은행나무와 전나무 설화를 통해서는 어려운 현실을 나무를 매개로 극복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나무의 상징성과 그 상징성에 의탁해 온 사회 효용적 기능이 맞닿은 자리에 나무를 모티프로 한 전설이 생겨난 것이다. 즉,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의 큰 번영과 웅대한 기상을 바라는 은행나무로, 아들의 마음은 늘 푸른 군자의 기상과 우뚝한 절개를 상징하는 전나무로 동일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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