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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밟기 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08
한자 地神-
이칭/별칭 「지신밟기 노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0년 2월 27일 - 「지신밟기 소리」자료 3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0년 4월 19일 - 「지신밟기 소리」자료 2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0년 9월 7일 - 「지신밟기 소리」자료 1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 「지신밟기 소리」, 『한국 구비 문학 대계』8-5, 8-6에 수록
채록 시기/일시 1992년 - 「지신밟기 소리」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4년 - 「지신밟기 소리」, 『한국 민요 대전』-경상남도 민요 해설집에 수록
채록 시기/일시 1998년 12월 1일 - 「지신밟기 소리」자료 4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지신밟기 소리」, 『거창의 민요』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2년 - 「지신밟기 소리」, 『민요와 한국인의 삶』1에 수록
채록지 「지신밟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원무릉 마을 지도보기
채록지 「지신밟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지산리 지도보기
채록지 「지신밟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지도보기
채록지 「지신밟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지하 마을 지도보기
채록지 「지신밟기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지하 마을
성격 민요
토리 메나리 토리
출현음 미·솔·라·도·레
기능 구분 의식요|세시 의식요
형식 구분 선후창 형식, 노래로 메기고 풍물로 받는 형식
박자 구조 3소박 4박의 자진모리장단
가창자/시연자 유문상[남, 1935년생, 1992년 녹음]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

[개설]

「지신밟기 소리」「지신밟기 노래」라고도 한다.「지신밟기 소리」는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세시 의식요이다. 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공동체에서 행하던 세시 풍속이다. 지신밟기는 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앞세워 마을 당산에 고사를 지내고 마을과 각 가정을 차례로 다니면서 지신(地神)을 밟으며 위안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을 함으로써 각종 잡귀를 쫓고 가정의 복덕과 풍농을 기원한다.

[채록/수집 상황]

『거창의 민요』(거창군, 1992), 『민요와 한국인의 삶』1(거창 문화원, 2002) 등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박종섭 등이 1980년에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에서 정수진, 유상숙, 이석기, 1998년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에서 남석규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80년 9월 7일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원무릉 마을에서 정수진[남, 65세]에게서 채록하였으며, 채록자는 최정여, 강은해, 박종섭, 임갑랑이었다. 『한국 구비 문학 대계』8-6(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81), 『민요와 한국인의 삶』1(거창 문화원, 2002)에 수록되었다. 1980년 4월 19일 거창군 남하면 지산리에서 유상숙[남, 45세]에게서 채록하였으며, 채록자는 최정여, 강은해, 박종섭, 임갑랑이었다. 『민요와 한국인의 삶』1에 수록되었다. 1980년 2월 27일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에서 이석기[남, 62세]에게서 채록하였으며, 채록자는 최정여, 강은해, 박종섭, 임갑랑이었다. 『민요와 한국인의 삶』1에 수록되었다. 1998년 12월 1일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지하 마을에서 남석규[남, 56세]에게서 채록되었으며, 채록자는 박종섭이었다. 『한국 구비 문학 대계』8-5(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81), 『민요와 한국인의 삶』1에 수록되었다.

한편, 1992년 거창군 남하면 지산리 자하 마을에서 유문상[남, 1935년생]에게서 채록되어 녹음된 후, 『한국 민요 대전』-경상남도 민요 해설집(MBC, 1994)에 수록된 판본도 있다.

[구성 및 형식]

「지신밟기 소리」의 박자는 3소박 4박이 한 장단이 되는 자진모리장단이다. 가창 형식은 대부분 노래[사설]로 메기고 풍물로 받는 형식이다.

[내용]

조왕님네/ 저 눈 크고 발 큰 놈은 저 물 알로 썩 차 주시고/ 때 삼아 복 삼아 이 집으로 점지해 주시사/ 에기영차 지신아/ 이 명당 좋을시고 골용센이 생겨서/ 골용산 꼭대기 떨어져 태벽산이 생기고/ 태벽산 꼭대기 떨어져 지리산이 생겨서/ 지리산 꼭대기 떨어져 거창읍이 생겨서/ 거창골이 생겨서 행교 터가 생겼네/ 행교 터가 생겨서 개화리라 생겼네/ 개화리가 생겨서 이 집터가 생겼네/ 이 집터 생겨서 성주목을 내로가세/ 아랫동네 역꾼들아 웃동네 토군들아/ 성주목을 내로가세/ 상남을 들어서 좋은 소나무 가리 비여/ 밑동 끊어서 상량채 웃동 끊어서 향낭채/ 이모저모 사모 마차 이모저모 팔모 마차/ 팔모배기 상량채 상량채 얹을 때/ 수물이라 베자채 휘휘칭칭 감아 놓고/ 아게자게 쎄를 걸어 앞에 거니 동문이요/ 뒤로 거니 서문이고 대목 수공을 따져 보세/ 김 대목 거동 봐 박 대목 거동 봐/ 김 대목 삼천 냥 박 대목 사천 냥/ 금이라도 칠천 냥 은이라도 칠천 냥/ 대목 수공을 가린 후에 칠성이나 다지세/ 동두 칠성을 따다가 이 집 조왕에다 겸하소/ 남두 칠성을 따다가 이 집 댁에다 겸하소/ 서두 칠성을 따다가 정지깜에다 겸하소/ 북두칠성을 따다가 아들에다 겸하소/ 아들 애기 놓거덩 글공부 시켜서/ 서울로 올라서 알장 급제 도장원/ 한림학사를 하고서 집으로 나려와서/ 모일 모일로 좋은 날을 가리 받아/ 돝 잡고 소 잡고 온갖 음식 마이 하고/ 술로 가지고 양유쳐 떡으로 가지고 팡게쳐/ 먼 데 사람 굿을 보고 젙에 사람은 춤추고/ 조선 천지 다 댕기도 꽃이 되고 일이 되고/ 금년 신수 들어서 아들 애기 낳거덩/ 나라기에 충신동 부모기에 호자동/ 형제간에 우애동 붕우간에 유신동/ 그런 아기를 점지하소/ 명을랑은 동방석 재줄랑은 제갈량/ 복을랑은 석순이복 그런 아기를 점지하소/ 농사라도 짓거덩 우거지고 씨러지소/ 한 가지 들거덩 이천 석이나 하소서/ 두 가지 들거덩 삼천 석이나 하소서/ 백대 천석을 하소서 만대유전을 하소서/ 구만년이나 누리서 천추만대를 누리소

-1980년 2월 27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개화 마을에서 이석기[남, 당시 62세]로부터 채록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지신밟기는 꽹과리, 징, 북, 장구, 쇠납 등의 민속 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선두로 소고패, 양반, 포수, 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마을의 당산굿을 비롯하여 집집마다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밟기 소리」를 부른다. 원래는 춤과 익살, 재주를 연희하나 세시 풍속의 차원에서는 생략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풍물패가 자기 집에 당도하면 주인은 고사 상을 차리고, 또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돈과 곡식을 성의대로 내놓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졌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현재는 영남 지방에 많이 남아 있다.

[현황]

생활 방식 및 주거 구조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지신밟기는 변화를 겪었다. 전통적 형태의 고사 소리를 옛 방식대로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사설을 만들고 악기만 한바탕 신명나게 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도 많다. 그리고 생활에 밀착된 세시 의례였던 지신밟기가 의례성이 약화되어 무대 위 공연 형태로 연희되는 경우도 흔하다. 현재는 지역 풍물패가 정월 대보름 거창 대동제에서 「지신밟기 소리」를 하며 관공서를 돌기도 하고, 그 외 일반 가정집이나 음식점 등 상점을 돌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지신밟기라는 세시 풍속 의식에서 「지신밟기 소리」를 부름으로써 지신(地神)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소원 성취를 기약하게 된다. 소원의 내용은 평안과 다산, 풍요 등 주술적인 것이다. 그리고 「지신밟기 소리」를 부름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친목과 우의를 다지기도 한다. 따라서 「지신밟기 소리」는 원래 주술적 기능을 지닌 의식요이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어울려 벌이는 공동체적 놀이의 마당이란 점에서 유희요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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