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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68
한자 秦再奚
영어공식명칭 Jin Jaehae
이칭/별칭 정백(井伯),벽은(僻隱),진두화(秦斗華)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1년연표보기 - 진재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3년 - 진재해 숙종 어진 주관 화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714년 - 진재해 연잉군 초상 작업
활동 시기/일시 1718년 - 진재해 소근포 첨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5년 - 진재해 격포 별장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6년 - 진재해 유수 초상 작업
활동 시기/일시 1726년 - 진재해 서생포 첨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진재해 양무 원종 일등 공신 녹훈
활동 시기/일시 1730년 - 진재해 충익장 임명
몰년 시기/일시 1769년연표보기 - 진재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98년 - 진재해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증직
추모 시기/일시 1890년 - 진재해 자헌대부 호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 증직
출생지 거창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주|이주지 화곡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 지도보기
묘소 진재해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성격 화가|무신
성별
본관 풍기
대표 경력 충익장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화가이자 무신.

[가계]

진재해(秦再奚)[1691~1769]의 본관은 풍기(豊基), 초휘(初諱)는 두화(斗華), 자(字)는 정백(井伯), 호(號)는 벽은(僻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진응세(秦應世)이며, 할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護軍)을 지낸 진계립(秦戒立)이다. 아버지는 증 통훈대부(贈通訓大夫) 진자창(秦自昌), 어머니는 이유신(李維新)의 딸 증 숙인(贈淑人)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부인은 박연일(朴連日)의 딸 울산 박씨(蔚山朴氏)다.

[활동 사항]

진재해는 조선 후기 거창부 화곡(禾谷)[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 출신으로, 숙종 연간부터 궁중의 화원(畵員)으로 활동하였다. 1713년(숙종 39) 숙종의 어진 중 원유관본(遠遊冠本)과 익선관본(翼善冠本)의 주관 화사(主管畫師)를 맡았으며, 노론계 대신 김창집(金昌集)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少論) 세력은 신임사화(辛壬士禍)를 통해 권력을 잡게 된다. 1723년(경종 3) 당시 소론계 당상관(堂上官)이었던 한배하(韓配夏)진재해에게 노론계 대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 목호룡(睦虎龍)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목호룡은 고변으로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역 중 한 명으로, 부사공신(扶社功臣)에 책봉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진재해는 선왕 숙종(肅宗)의 어진(御眞)을 그린 자신이 신임사화를 일으킨 목호룡의 초상을 그릴 수 없다며, 소론계 대신의 강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부하였다. 1725년(영조 1) 노론계 대신인 우의정(右議政) 민진원(閔鎭遠)이 이러한 사실을 알리자, 영조진재해의 품계를 올려 주었으며 자손에게는 군직(軍職)을 내렸다고 한다.

진재해는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무관직에도 올랐는데, 1718년(숙종 44) 소근포 첨사(所斤浦僉使), 1725년 격포 별장(格浦別將), 1726년(영조 2) 서생포 첨사(西生浦僉使)에 임명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이 일어나자 진재해는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진재해경상도 안음현(安陰縣) 출신으로 난을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을 막았으며, 그 공으로 양무 원종 일등 공신(揚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이어 1730년(영조 6)에는 충익장(忠翊將)에 올랐다. 진재해는 1769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진재해의 문집으로는 2권 1책의 『벽은 유집(僻隱遺集)』이 전한다. 후손이 남긴 『벽은 유집』과 풍기 진씨 가문의 족보에는 진재해가 문인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생전에 그는 궁중 화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특히 초상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국립 고궁 박물관 소장의 1714년(숙종 40) 작 「연잉군 초상(延礽君肖像)」[보물 제1491호], 경기도 박물관 소장의 1726년(영조 2) 작 「유수 초상(柳綏肖像)」[보물 제1176호] 등이 전한다. 산수화에도 능해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월하 취적도(月下吹笛圖)」 등 다수의 그림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묘소]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진재해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신임사화 직후 목호룡의 초상을 그리지 않은 절개를 높게 기려, 1779년(정조 4) 정조진재해의 자손들을 군문(軍門)에 특별히 등용하였다. 진재해는 1798년(정조 22)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에 증직되었으며, 1890년(고종 27)에는 자헌대부 호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진재해는 고향인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 화곡의 상충사(尙忠祠)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진예남(秦禮南)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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