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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75
한자 居昌心蘇亭
영어공식명칭 Simsojeong Pavilion
이칭/별칭 창남 의숙,살목 정자,심연 정자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95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기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 시대 - 거창 심소정 창건
이전 시기/일시 1771년 - 거창 심소정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7년 - 거창 심소정 개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 거창 심소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심소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 심소정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958 지도보기
성격 정자|누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정자]|3칸[누각]
측면 칸수 2칸[정자]|2칸[누각]
소유자 파평 윤씨 종중
관리자 파평 윤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활동한 윤자선을 기리는 조선 시대의 정자와 문루.

[개설]

파평 윤씨 문중의 정자로 화곡(華谷) 윤자선(尹孜善)을 기리고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세종 때 북벌의 공을 세워 단성 현감으로 부임한 윤자선이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동에서 단성 임지를 오가며 심연에서 쉬어 갔다. 그 뒤 손자 윤삼빙(尹三聘)이 양항리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심연재를 짓고 서당 교육을 하다가 후손들이 1771년 중건하고, 1817년 현와(弦窩) 윤동야(尹東野)가 외후손인 이씨와 박씨 문중과 함께 다시 개수하였다.

[위치]

거창 심소정(居昌心蘇亭)은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길 253-158[양항리 958]에 있다. 거창군 거창읍에서 체육 공원 옆 강변로를 따라 내려가면 광주 대구 고속 도로 옆 언덕에 있다. 앞으로는 황강이 흐르고 옆으로는 대곡천이 흘러 합류하고 거창읍 한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좋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거창 심소정은 처음에는 윤자선이 화양동에서 단성을 오가며 쉬어 가는 장소였으나 손자 윤삼빙이 양항리로 이사를 하고, 심연재를 창건하여 서당 교육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다. 1771년에 후손 윤동야가 중건하고, 선조 추모와 교육 장소로 활용하였다. 1817년에는 후손과 외손인 이씨와 박씨 종중에서 협조하여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고, 1919년에는 후손 윤병수가 현 거창 초등학교의 전신인 창남 의숙을 만들어 근대식 학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965년에는 퇴락한 소심루 건물을 중수하고, 1990년대에 다시 수리하고 단청을 하였다.

[형태]

거창 심소정은 정자 심소정(心蘇亭)과 소심루(小心樓) 및 비석 등의 부속 건물과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 심소정은 오른쪽으로 방 2칸, 왼쪽으로 대청이 2칸인 정면 4칸과 측면 2칸으로 된 5량 구조로서 마루 끝에 계자 난간을 두른 목조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정자 안에는 강완의 「심소정기」, 현와 윤동야의 「심소정 중건운」 2수, 아호(鵝湖) 이동승(李東昇)의 「심소정 중수운」 2수, 유간(酉澗) 박희전(朴熙典)의 「심소정 중수운」, 교우(膠宇) 윤주하(尹胄夏)의 「삼가 신소정 원운을 차운하여」 등 1편의 기문과 4편의 시가 걸려 있다.

소심루는 거창 심소정의 부속 문루로서 정자가 있는 언덕 아래에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2층 다락집 형태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마루 끝에 계자 난간을 둘렀다. ‘단성 현감 윤공 유허비(丹城縣監尹公遺墟碑)’는 거창 심소정 건물 왼쪽 옆에 있다. 파평인 화곡 윤자선이 이곳의 산수 경관이 아름다워 이사를 오게 된 연유와 거창 심소정을 건립하게 된 유래와 후손들의 전승, 보존을 위한 노력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글은 조선 후기 통훈대부 행 전 홍문관 교리를 역임한 진주 강세백(姜世白)[1748~1821]이 1817년 글을 짓고, 후손 생원 장흠(長欽)이 글을 썼다. 비석은 귀부와 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심소정 전현 추모비(心蘇亭前賢追慕碑)’는 소심루의 오른쪽 마당 가에 있다. 거창 심소정의 건립 과정과 유래 및 보수에 대한 사항과 후손들의 활동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1919년 파리 장서 독립 청원과 창남 의숙으로 근대 학교 교육을 한 장소였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선조를 추모하고 있다. 글은 1990년에 후손 윤광식(尹光植)이 지었고, 비석은 소심정 계원이 세웠다. 비석은 귀부와 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조선 시대에는 정자를 심신 수양과 강학을 통한 교육, 선조 추모를 위한 기능으로 사용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 운동을 위한 장소와 근대 교육을 위한 학교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윤씨 문중 후손과 지역민의 휴식과 수양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거창군 양항리와 남하면 내에는 파평 윤씨인 화곡 윤자선의 후손이 많이 살고 있으며, 주로 양항리 파평 윤씨 종중에서 정자를 관리하고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에 건립되었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향촌 사대부의 자녀 교육을 하던 장소였고,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을 논의하고 근대 교육을 실시한 학교였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 의의와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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