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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73
한자 居昌樂水亭
영어공식명칭 Geochang Yosujeong Pavilion
이칭/별칭 수승대 정자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기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42년연표보기 - 거창요수정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2년 - 거창요수정 임진왜란으로 소실
이전 시기/일시 1805년 - 거창요수정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6로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월 13일연표보기 - 거창요수정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요수정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요수정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6 지도보기
성격 누정|정자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거창 신씨 요수공파 종중
관리자 거창 신씨 요수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조선 후기 요수 신권이 경상남도 거창군 수승대 경내에 건립한 정자.

[개설]

거창요수정(居昌樂水亭)요수(樂水) 신권(慎權)[1501~1573]이 벼슬을 단념하고 구연재와 척수대 사이에 위천 물가에 휴식과 자기 수양의 공간으로 건립한 정자다. 향촌 자제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방문자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위치]

거창요수정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6번지 위천변 바위 위에 있다.

[변천]

거창요수정은 1542년(중종 37) 정자를 건립한 뒤, 신권이 이곳에 은거하여 조숙(曺淑)[1504~1583]·이정(李桢)[1512~1571]·성팽년(成彭年)[1540~1594]과 강학하던 곳이다. 그 뒤 정자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후에 후손들이 중건했으나 다시 홍수로 무너지자 1805년(순조 5) 구연 서원 건너편 자연 암반 위에 이건하였다. 그 사이 수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후손 신복명의 「요수정기」를 위시하여 기문 3편, 신권의 「원운」 2편, 「퇴계 선생 수승대 화답시」 등 모두 32편의 시가 중방에 걸려 있다. 현재 수승대 일대가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형태]

거창요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형 건물로 부속 건물은 없고 겹처마로 된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자연 암반을 활용하여 각 자연 초석 위에 12개의 기둥을 세웠다. 하부 기둥은 둥근 원목을 자연 형태 그대로 사용하여 건축미를 극대화하였고, 기둥 밖의 네 모퉁이에 활주를 세워 하중을 분산시켰다.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인 것이 특징이며, 방은 판방으로 구성하여 배면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냈다.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마루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러 안전과 미적 형상을 돋보이게 하였다. 정자 뒤편에 시인 박목월 선생이 쓴 ‘요수 선생을 기리는 글’을 새긴 작은 비석이 있다.

[현황]

요수 신권의 제사는 구연 서원에서 모시고 있다. 이곳을 찾은 많은 문인들이 시를 지어 느낀 감회를 판상시로 걸어 두었다.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물과 트인 공간과 숲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면서 스스로 자기 정화를 하여 수양하고 창작의 공간으로 활용하여 조선 후기 거창 누정 문화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지금은 국민 공원으로 휴양처와 거창 국제 연극제를 공연하는 문화 공간으로서 전통과 현대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거창요수정은 조선 시대 노장의 무위자연의 건축 기법을 적용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축한 건물이다. 정자가 갖추어야 할 물과 숲과 트인 공간 세 가지 자연 조건을 모두 갖춘 거창요수정은 19세기 초 영남 정원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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