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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71
한자 八二三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8월 23일연표보기 - 8·23사건 야산대의 거창읍 점령
종결 시기/일시 1949년 8월 23일연표보기 - 8·23사건 국군과 경찰대의 거창읍 공격 탈환
발생|시작 장소 거창읍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종결 장소 거창읍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성격 해방 후 좌우 갈등 속에서 좌익계 야산대의 활동과 국군의 토벌
관련 인물/단체 거창 야산대|응원 경찰대|거창읍장 신용희|경상남도지사 문시환

[정의]

1949년 8월 23일 남조선 노동당 무장 조직 야산대가 거창 읍내를 공격하여 경찰서, 군청, 재판소 등을 방화한 사건.

[개설]

1949년 8월 23일 새벽 4시 야산대 50여 명이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내를 공격하여 경찰서, 군청, 재판소, 경찰서 사찰 주임의 관사 등을 방화했다. 교전 중에 경찰과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군경의 공격으로 야산대원 12명이 사살되었다. 야산대는 퇴각하면서 인근 지서들을 파괴했다.

[역사적 배경]

야산대는 남로당의 무장 조직으로 1948년 10월 여순 사건 이후로 반란군 잔병 일부와 결합해 활동했다. 1949년 8월 거창 일대에서 야산대 활동은 절정에 달했다.

[경과]

거창 읍내 교전 중에 경찰 6명이 사망하고 우편국 직원 2명과 거창 초등학교 교사 2명이 희생되었고, 여성 대원 2명을 포함한 야산대 대원 12명이 사살되었고 2명이 생포되었다. 야산대는 자동차 6대를 강탈하여 도주하면서 월천 지서, 주상 지서, 고제 지서를 파괴했다. 거창 읍내 주요 건물뿐만 조선 시대 관청인 객사도 불탔다. 이 사건으로 경상남도 도지사가 사퇴하고, 중앙 정부에서 조사반을 파견하였으며, 군경의 야산대 토벌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야산대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결과]

경상남도 도지사 문시환이 사표를 내고 중앙 정부 내무부는 조사반을 파견하여 책임자를 엄중 처단했다. 국군과 경찰은 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와 전투 경찰대를 창설하여 야산대 토벌에 총력을 기울여 야산대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의의와 평가]

8·23사건은 해방 후 좌익계를 토벌하고 대한민국의 반공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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