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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70
한자 表鉉台 本家 被襲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죽동 부락]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7월 6일연표보기 - 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 표현태 국회의원의 본가 습격
종결 시기/일시 1949년 7월 28일연표보기 - 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 표현태 본가를 습격한 야산대 토벌
발생|시작 장소 표현태 국회 의원 본가 - 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 동변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거창 수도산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지도보기
성격 해방 뒤 좌우 갈등 속에서 좌익계 야산대의 활동과 국군의 토벌
관련 인물/단체 표현태|강정호

[정의]

1949년 7월 6일 경상남도 거창군 수도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남조선 노동당 무장 조직 야산대가 국회 의원 표현태의 본가를 습격한 사건.

[개설]

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은 1949년 7월 6일 밤 경상남도 거창군 수도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야산대(野山隊)[미군정 시기에 남조선 노동당이 만든 무장 조직]가 거창군 월천면 표현태 국회 의원의 본가를 습격하여 그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표현태 국회 의원은 우익 부농이었으며, 제헌 의원이었다. 습격한 야산대는 1949년 7월 말 경찰 전투 부대에 토벌되었다.

[역사적 배경]

1949년 3월 거창군 위천과 북상을 습격한 김지회 부대가 4월에 섬멸된 이후에도 거창 지역 일대에서는 야산대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경과]

1949년 7월 6일 밤 강정호가 지휘하는 거창 수도산 야산대 30여 명이 거창군 월천면에 있는 표현태 국회 의원의 본가를 습격하여 아버지 74세 표정준과 표정준의 손자인 32세 표영수를 살해했다. 피습 사건 이후 경찰은 수도산 야산대 토벌에 총력을 기울였고, 7월 말 모두 토벌하였다.

[결과]

1949년 7월 26일 새벽 거창 경찰서 웅양 지서 주임 오 경위가 지휘하는 무장 경찰 10여 명이 수도산 부근에서 야산대와 교전해 야산대 부책임자 정영명과 대원 박월수를 체포했다. 7월 28일 거창 경찰서 형사 주임과 보안 주임이 지휘하는 특별 전투 부대는 수도산에서 야산대와 교전해 야산대장 강정호와 대원 이재수 등 5명을 사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로써 표현태 가족을 피습한 야산대원은 모두 토벌되었다.

[의의와 평가]

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은 해방 뒤 좌우 갈등 가운데 좌익계를 토벌하고 대한민국의 반공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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