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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공립 보통학교 동맹 휴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59
한자 居昌 公立 普通學校 同盟 休校
이칭/별칭 동맹 휴학,맹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1년 5월 2일연표보기 - 거창 공립 보통학교 동맹 휴교, 1학년 제외 149명 전원이 등교 거부, 일본인 교장에 대한 불만 및 요구 사항을 학교에 제출
전개 시기/일시 1923년 9월 13일연표보기 - 거창 공립 보통학교 동맹 휴교, 6학년 학생 60명 전원이 일본인 교사의 학대에 항의하며 동맹 휴교 단행
전개 시기/일시 1930년 11월 21일연표보기 - 거창 공립 보통학교 동맹 휴교, 6학년 50여 명이 일본인 담임 교사와의 갈등으로 동맹 휴교 단행
발생|시작 장소 거창 공립 보통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306 지도보기
성격 학생 운동
관련 인물/단체 신명준|김해룡|김덕수|황숙종|김종옥|신용탁|심삼출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 또는 민족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반대하여 등교를 거부한 운동.

[개설]

일제 시대 거창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 휴학은 학교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 배경에는 민족 차별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담고 있다.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 항일 민족 운동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동맹 휴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한국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3·1 운동 후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대항해서 또는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다방면의 학생 운동을 전개했다. 동맹 휴학은 학원 내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발단이 되어 일제 식민지 노예 교육에 대한 규탄, 나아가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발전하고 결국 민족 독립을 부르짖는 민족 운동의 성격으로 천착되었으며, 한 학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한국인의 교육 문제, 전 민족의 문제로 나타났다.

[경과]

거창 공립 보통학교의 학생들은 1921년 5월 2일, 1학년을 제외한 전원이 등교를 거부하고 일본인 교장에 대한 불만 및 요구사항을 제출했다. 일본인 교장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학생에게 불친절한 것, 학교 일에 열심이 없는 것, 학교 건물을 고치지 않고 오히려 학생만 잘못했다고 하는 것’ 등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인 교장 후루자와는 동맹 휴업을 주도한 학생 2명을 퇴학 처분하고 5명을 정학시켰다. 다른 학생들은 이 처분에 분노하여 다시 동맹 휴업에 들어갔다.1923년과 1930년에도 일본인 담임 교사에게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단결하여 동맹 휴업을 했다. 1923년 9월 13일 6학년 학생 남여 60명 전원은 일본인 교사의 학대에 항의하며 동맹 휴교를 단행했다. 1930년 11월 21일 6학년 50여 명이 일본인 담임 교사와의 갈등으로 학교와 군수, 학부모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동맹 휴교를 단행했다.

[결과]

일본인 학교장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및 군민들의 반발이 강해지자 후루자와는 부산의 부민 보통학교로 전근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민족 차별이나 일본인 교육자에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된 동맹 휴업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자각의 통로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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