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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37
한자 三別抄
영어공식명칭 Three Elite Patrol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상현

[정의]

고려 후기 거창 지역사에 영향을 준 대몽 항쟁을 기치로 활동한 저항 세력.

[개설]

삼별초(三別抄)는 대몽 항쟁기 고려의 군사로 치안과 대몽골 전투를 수행하였으며, 무인 정권이 붕괴된 뒤 1270년 몽골[元]과 강화(講和)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독자적 정부를 표방하며 싸웠으나 1273년 고려·몽골 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들이 항쟁을 벌이는 동안 남해 연안과 내륙 일부 지역이 삼별초의 영향권에 들자, 고려 정부는 거제현 사람들을 오늘의 거창 지역인 가조현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역사적 배경]

삼별초(三別抄)는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신의군(神義軍)을 합쳐 부른 이름이다. 좌·우별초는 1230년(고종 17) 무렵 무인 집정 최우(崔瑀)에 의해 설치된 야별초(夜別抄)에서 비롯하였다. 1232년 고려 정부가 강화로 천도한 뒤 대몽 항전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으로 활약했으며, 강화도를 근거지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몽골군과 싸워 큰 전과를 올려 경별초(京別抄)로 불리기도 하였다. 무인 정권이 붕괴된 뒤 고려의 몽골에 대한 항복에 반발하여 1270년(원종 11)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독자적으로 정부를 세우고 개경 정부와 몽골[원]에 대항하여 3년 동안 싸웠으나 1273년 여몽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섬멸당하였다. 당시 삼별초의 대몽 항전 활동에는 다수의 민인들이 동참하였고, 남해 연안이 이들의 활동 무대가 되자 고려 정부는 거제현 사람들을 거창의 가조현으로 이주하게 하여 살게 하였다.

[경과]

초기에는 삼별초를 해산하려 한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드는 형태였으나 곧 이어 ‘반몽’을 기치로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새로운 정부까지 구성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많은 동조 세력들이 가세하게 되면서 점차 본격적인 반몽 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주로 진도·남해·제주를 근거지로 하여 반몽 항전을 주도하였다. 진도 정부는 남해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별도의 수군을 운용하면서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남해에서 이들을 이끌었던 지휘관은 유존혁(劉存奕) 장군이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거창 지역은 거제 지역민들이 들어와 살게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하였다.

[결과]

삼별초 항쟁은 여몽 연합군에 의한 진도 정부의 붕괴에 이어, 마지막 배후 기지인 제주마저 공격당하여 함락되면서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왜구가 창궐하고 남해 연안이 왜구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면서 거제도로부터 온 주민들은 거창에서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는 삼별초 사건으로 인하여 거제현 사람들이 가조현에 들어와 임시로 치소를 두게 되면서 거제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들 거제현 사람들은 이후 150여 년간 거창에 머물게 되었으며 조선 세종조에 들어와 본래의 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거창 지역에는 거제현의 속현인 아주현[남하 아주], 송변현[남상 송변] 등이 설치되었으며, 오양역이 설치되어 교통상 변화도 뒤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거창의 인구수와 현세(縣勢)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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