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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선생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91
한자 龍洲先生遺稿
영어공식명칭 Yongju seonsaeng yugo
이칭/별칭 용주 유고(龍洲遺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586년연표보기~1669년연표보기 - 『용주선생유고』 조경이 저술
간행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용주선생유고』 조구원이 간행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성격 전적|문집
저자 조경(趙絅)
간행자 조구원(趙九畹)
권책 23권 10책
규격 21.5×16.5㎝
권수제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
판심제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조선 시대 문신 조경의 시문집.

[개설]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는 총23권이며, 8책 본과 12책 본으로 된 것이 전해진다. 서문과 발문이 없고, 각 권의 목록만 존재한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과 국립 중앙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조경(趙絅)[1586~1669]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조익남(趙翼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유개(柳塏)의 딸이다. 할아버지인 조현이 임진란에 참전하였을 때인 7세에 경상남도 거창군에 내려왔으며, 이곳에서 모계(茅谿) 문위(文緯)에게 배웠으며 미수(眉叟) 허목(許穆), 동계(桐溪) 정온(鄭蘊)과 도의와 절의로 사귀었다.

어렸을 때부터 문사(文詞)가 대단히 명성이 있었고, 1612년(광해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당시에 이이첨(李爾瞻)이 사사로이 교분을 맺고자 하나 이를 물리치고 거창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형조 좌랑·목천 현감 등을 지내고, 1626년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장원 급제한 후 정언 교리, 이조정랑을 지냈다. 1636년 사간(司諫) 때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고, 응교·집의 등을 지냈다. 1643년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형조 참의·이조 참의·전주 부윤·대제학·형조 판서·이조 판서·예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1650년 청나라 사문사가 와서 척화신(斥和臣)의 처벌과 주문(奏文)의 부실함을 추궁하자 공이 그 책임을 지고, 영의정 이경석(李景奭)과 함께 백마산성에 유배되었으나 다음해에 풀려나 경기도 포천시에 낙향하였다. 1669년 사망 후 영의정에 추서되었고, 숙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기도 포천시의 용연 서원,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의 곡강 서원, 강원도 춘천시의 문암 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묘는 경기도 포천시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경의 손자 조구원(趙九畹)이 1703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23권 8책 또는 23권 12책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21.5×16.5㎝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이다.

[구성/내용]

『용주선생유고』의 구성은 권1~5에 시 548수, 권6~9에 상소문 76편, 권10에 계사(啓辭) 14편, 권11에 서(序) 19편, 기(記) 5편, 권12에 발(跋) 8편, 변(辨) 1편, 설(說) 4편, 책문(策問) 및 잡저(雜著) 11편, 상량문(上樑文) 2편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시책문(諡冊文), 죽책문(竹冊文), 비답(批答) 등이 실려 있다. 또한 권13에 제문(祭文) 28편, 권14~21에 묘지명(墓誌銘) 6편, 묘문(墓文) 29편, 신도비문 21편, 권22에 시장(諡狀) 2편, 권23에 『동사록(東槎錄)』이 수록되어 있다. 『동사록』은 1643년 조경이 통신 부사로 일본에 갔을 때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화루선설(畵樓船說)」, 「답도춘서(答道春書)」, 「일본국 임도춘원서(日本國林道春原書)」, 「중답 임도춘서(重答林道春書)」, 「임도춘원서(林道春原書)」, 「관백설(關白說)」, 「제일본 성씨록(題日本姓氏錄)」, 「왜국 삼도설(倭國三都說)」 및 시(詩) 55수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용주선생유고』에는 거창 지역의 옛 모습이 담겨 있으며 당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흐름, 일본으로 사신을 갔을 때 본 일본의 풍물 등이 고루 실려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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