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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62
한자 茅谿集
영어공식명칭 Mogyejip
이칭/별칭 모계 선생 문집(茅谿 先生 文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554년연표보기~1631년연표보기 - 『모계집』 문위가 저술
간행 시기/일시 1829년연표보기 - 『모계집』 문광칠이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모계집』 영인본 간행
성격 문집
저자 문위(文緯)
간행자 문광칠(文光七)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반곽 25.0×18.0㎝
어미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모계선생문집(茅谿先生文集)
판심제 모계집(茅谿集)

[정의]

경상남도 가북면 용산리 출신의 조선 시대 문신 문위의 시문집.

[저자]

문위(文緯)[1554~1631]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자는 순부(純夫), 호는 모계(茅溪)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산두(文山斗)이며, 어머니는 함양 선교랑(咸陽 宣敎郞) 오세평(吳世平)의 딸이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배웠고 이후 조식(曺植), 오건(吳健), 정구(鄭逑)에게서 배웠다. 오장(吳長), 윤경남(尹景男), 조응인(曺應仁) 등과 교유하였다. 제자로는 조경, 변창후, 정시수, 서익, 정필달 등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창의하여 의병장 김면(金沔)과 함께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다. 김면이 전쟁 중에 병으로 죽자 직접 의병을 이끌었다. 부모의 상을 당하자 고향인 거창현 모계리(茅溪里)에 집을 마련하여 10여 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후 이름이 알려져 김우옹(金宇顒), 유성룡(柳成龍) 등에게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고 이후 선공감 주부(繕工監主簿),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독서에만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 후 70세의 나이로 고령 현감에 부임하였으나, 수개월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용원 서원(龍元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 『모계집(茅谿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문위의 7대손 문광칠(文光七)이 흩어져 일부 없어지고 남은 가장 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편차(編次)하여, 유심춘(柳尋春)의 교정을 받아 1829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4책 2권의 목판본이다.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의 크기는 25.0×18.0㎝이며, 반엽은 10행 20자이다. 어미는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모계선생문집(茅谿先生文集)’이며,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모계집(茅谿集)’이다.

[구성/내용]

『모계집』은 권수(卷首)에 1829년에 유심춘이 지은 서(序)와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목록(目錄)이 있다. 권 1은 시(詩), 만사, 부(賦), 소(疏)이다. 그중에서 「대영유신리최수우소(代嶺儒伸理崔守愚疏)」는 최영경(崔永慶)의 무죄와 신원(伸寃)을 탄원한 글이다. 권 2는 35인과 주고받은 57편의 편지로, 폭넓은 교유 관계를 보여 준다. 권 3은 답문(答問), 잡저(雜著), 발(跋), 제문(祭文), 묘지(墓誌), 행록(行錄)이 실려 있다. 권 4 부록에는 문인 허목(許穆)이 지은 행장과 묘지명, 만장(挽章) 등과 오장(吳長), 이영(李霙) 등의 찬영시(讚詠詩)와 정구, 장현광(張顯光) 등의 문답 서찰(問答書札)이 실려 있다. 특히 「모계 선생 일기(茅谿先生日記)」는 당시 경상남도 함양군 선비 정경운의 일기인 『고대일록(孤臺日錄)』과 더불어 영남 지역의 임진왜란 역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모계집』모계 생종 당시의 풍물과 거창 지역의 문운(文運)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영남 지방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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