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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311
한자 所也 敎會
영어공식명칭 Soya Presbyterian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소야1길 175[와룡리 37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규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소야 교회가 와룡 교회로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와룡 교회에서 소야 교회로 개칭
최초 설립지 소야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안산골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소야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376
현 소재지 소야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376 지도보기
성격 교회
설립자 박응용
전화 055-944-9130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개설]

1909년에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안산골소야 교회의 전신인 교회가 설립되었다. 서울 사람 박응용의 전도로 서재에서 40여 명이 예배를 보다가 이후 예배당을 건립했다. 인도자 김동명이 무고한 의병 혐의로 잡혀가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7~8명이 겨우 모이다가 그 후 회복되었다.

조선 말 궁궐에서 일했던 박응용 대감은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에게서 전도를 받아 개종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의 강제 합병으로 인해 낙향하여 고향에 교회를 세웠다. 이때가 1909년이었으며, 최초의 교회는 현재 소야 마을의 뒷쪽에 있는 안산골에 있었다.

[설립 목적]

소야 교회는 소야리 주민을 구원하고 일제하에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소야 교회는 1909년 당시 처음에 와룡 교회라고 불릴 때부터 현재까지 소속 교단이 두번 바뀌었다. 최초 설립자였던 박응용 대감이 궁궐에서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를 통해 개종했기 때문에 대한 기독교 감리회로 출발했다. 이후 1913년경에는 현재의 거창군 신원면 소야리의 행정 구역은 당시 삼가군[현재의 삼가면] 소속이었고, 그 시기 삼가군에 구세군 교회가 이미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구세군으로 소속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리고 1919년에 이르러 행정이 변화되었는데, 이는 신원면이 거창군으로 편입되어 거창읍 교회의 지도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장로교 소속의 교회가 되었다. 1919년 10월에 거창읍 교회의 지원을 받아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376으로 이전했다.

한국 전쟁이 발생했던 1950년 12월 14일 토벌대의 방화로 전소되고 1951년부터 1653년까지 가정에서 예배를 보았다. 1954년에 신원 교회를 새로 지어 신원 교회에서 1957년까지 예배를 보다가 1958년에 다시 와룡 교회를 건축했다. 일제 시대 때는 의병 활동을 한 죄명으로 초대 영수 김윤명이 문초를 당해 죽게 되었고, 한국 전쟁 때는 1951년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시에 3대 영수였던 조해권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소야 교회’라는 명칭은 1965년부터 사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회 절기인 부활절과 성탄절을 전후하여 마을 회관 및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여 교제하고 있으며, 교회 내적으로는 목사 부부가 농번기를 통해 신자들의 논과 밭을 방문하면서 교제하고 있다.

[현황]

2016년 현재 담임 목사 최종범 외 10여 명의 신자가 모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속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서도 100년을 이어 가고 있는 교회이자 근현대 역사를 목격한 교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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