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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43
한자 文化藝術
영어공식명칭 Culture and Ar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일원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덕진

[정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사진, 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개설]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 등으로 불리어 온 거창(居昌)은 남덕유산을 등에 지고 동쪽으로는 가야산, 서남쪽으로는 지리산을 멀찍이 벌린 채 남쪽 저 멀리 황매산을 내다보며 한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경상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 3도의 접경 지역이자, 덕유산·가야산·지리산 3대 국립 공원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신라·가야 문화권이면서도 백제 문화권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완충 지역으로서 문화·예술의 융화가 잘 나타나 있다.

[변천]

거창의 문화 예술은 가야·신라·백제를 아울렀기 때문에 거창 박물관에 소장된 토기 및 고려, 조선 시대의 청자·분청사기·백자·민구류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문화 예술의 혼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본다면, 거창의 미술 작품은 통일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창 양평리 석조 여래 입상’[보물 제377호]과 ‘거창 농산리 석조 여래 입상’[보물 제1436호], 천덕사지 삼층 석탑 등이 있다. 고려 시대 초기의 것으로는 ‘거창 상림리 석조 보살 입상’[보물 제378호], ‘거창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보물 제530호], 아림사지 오층 석탑, 갈계리 삼층 석탑[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77호], ‘거창 감악사지 부도’[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3호], 고려시대 고분 벽화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둔마리 벽화 고분 등이 있다. 거창군 북상면에서 출토된 국보 제172호 ‘진양군 영인 정씨 묘 출토 유물’ 중 백자 상감 초화문 편병은 삼성 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으며, 송계사 괘불 탱화 영산회상도는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왕사(王師)였던 희랑 대사(希浪大師) 이후, 거창은 갈천(葛川) 임훈(林薰),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동계(洞溪) 정온(鄭蘊), 모계(茅溪) 문위(文緯), 면우(傘宇) 곽종석(郭鍾錫), 교우(膠宇) 윤주하(尹胄夏) 등과 같은 명현과 석학들을 배출하였다. 이 가운데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동계 정온[1569~1641]의 백구가(白鷗歌),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뜨더이다. 왕래백구는 무슨 뜻 머것는고 앗구려 공명도 말고 너를 조차 놀리라”는 거창 박물관 앞에 시비(詩碑)로 서 있다.

또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남긴, 그 절묘한 경치를 사모하여 수송(愁送)을 수승(搜勝)으로 고쳤다는 ‘수승대(搜勝臺) 명명시(命名詩)’를 포함하여, 조선 시인 묵객들의 주옥같은 명시들 중에는 거창 수승대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 무수하다. 그뿐만 아니다. 18세기의 천재화가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은 『진경 산수화첩(眞景山水畵帖)』[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에 옛 가섭암을 그림으로 담았다.

조선 성종김종직의 문집을 편찬하고 함양 군수를 지냈던 매계(梅溪) 조위(曺偉)가섭암에서 차를 마시고 「가섭암(迦葉庵)」이라는 차시를 읊었는데, 이는 거창의 차 문화를 밝히는 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도 거창 곳곳에 자리하는 누정(樓亭)들에 걸친 시문들에서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의 정취가 묻어나고 거창 고을 옛 선비들의 아취(雅趣)가 풍긴다.

[연극]

거창 연극은 신파극으로는 1941년 일제 강점기에 당시의 거창좌에서 막을 올린 거창 가무단이 시원이 된다. 대중음악과 함께 출발한 거창 가무단은 노래와 춤이 섞인 악극단이었다. 가무단 무대는 1950년대 전후까지 성행하였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춘다. 1960년대에 이르러 학생 및 대중 연극의 막이 거창에서 오르기 시작하였다. 당시 거창 농업 학교 교사로서 극본과 연출을 맡았던 강원석은 학생 연극에 심혈을 기울여 오늘날 거창 연극의 뿌리를 내렸다.

1983년 지역 내 교사들 위주로 구성된 극단 입체[대표 이종일]가 창단되면서 거창 연극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극단 입체는 경남 지역 연극인들의 화합과 소극장 활성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월 연극제’를 추진했으며, 이는 ‘거창 국제 연극제’의 모태가 되었다. 거창 연극제는 1989년~1993년[제1회~제5회]에 ‘시월 연극제’로 출발했으며, 1994년[제6회]에 ‘거창 전국 연극제’로 전국화를 시도했다. 1995년[제7회]부터 국제 연극제로 확대되었으며, 1997년[제9회]부터 행정적 및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한편 축제 시기를 1998년[제10회]부터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꿔 개최하였다.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축제들과는 달리 자연 공간에서 펼쳐지는 야외 축제라는 점이 특징이다.

거창 국제 연극제는 대규모 예술 축제이며, 국내외 정상급 연극 단체를 초청하여 야외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국내 공연 예술계의 대표적인 문화 관광 상품이며, 공공과 민간 영역이 함께하여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 연극제이자 지역 문화 행사이다. 2016년 제28회 거창 국제 연극제는 7월 29일~8월 15일까지 18일간 수승대 일원 야외극장에서 개최한다.

[영화]

영화 예술에 대한 거창 군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거창은 1940년대 말 최초의 문화 시설로 읍민관(邑民館)을 건립하면서 영사기도 함께 설치하였다. 거창 읍민관은 1950년대 후반 들어 거창 극장으로 변신하여 운영되었는데, 1982~1983년 사이에 폐관되었다. 이후 동화 극장, 제일 극장, 중앙 시네마가 운영되다가 운영난으로 폐관되었다.

2006년 고센 시네마가 2개 관[1관 245석, 2관 165석]으로 개관되는데, 운영난으로 역시 2011년 초 휴관하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군민들의 영화관 운영에 대한 간절한 요청과 거창 지역 사회의 기대에 대한 부응으로 고센 시네마는 2011년 12월 15일부터 재개관을 하였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거창군의 유일한 영화 상영관이었던 고센 시네마는 2015년 3월 31일자로 영업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폐업하였다. 고센 시네마를 인수한 새로운 운영자인 메가 박스는 내부 인테리어와 관람 환경을 새롭게 개선해 2015년 7월 24일 ‘메가 박스 거창’으로 개관하였다. 메가 박스 거창은 전체 2개 스크린 410석인데, 이는 우리나라 멀티플렉스 영화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것이다.

거창으로 귀농한 영화 감독 김재수가 거창군의 지원을 받아 제작 감독한 영화 「청야(淸野)」[2013]는 1951년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조정래 감독의 「귀향(鬼鄕)」은 거창에서 첫 촬영을 하였다. 영화에는 거창의 숨은 비경이 곳곳에 등장한다. 2014년 10월 거창군 위천면 서덕들에서 첫 촬영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황산 전통 한옥 마을의 담장 길까지, 영화에서의 거창의 자연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최근 거창의 자연은 최근 상영된 영화 「협녀」의 북상면 갈계숲, 송혜교 조인성이 주연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위천면 수승대 등, 많은 지역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술]

미술 협회 거창 지부는 민족 미술과 지역 미술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1991년 설립되었다. 매년 회원전을 개최하고 있다. 향토 예술인으로는 이상남, 정무길, 윤근, 신정법, 정종여 등이 있다.

[음악]

거창 국악은 남하면 무릉리 출신의 신수용이 고향에 정착하여 1988년 ‘슬기둥 국악 연구원’을 설립하여 무료로 단소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때 단소를 배우던 교사들을 중심으로 국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 국악 협회 거창 지부를 창립하였다. ‘우리 문화 연구회’는 국악인 한대수에 의해 1985년 ‘거창 기독교 청년회 풍물패 휘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창단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우리 문화 연구회’로 재창립되었다.

거창의 서양 음악은 웅양 동호 출신 이석화(李碩和)로부터 시작된다. 동경 음악 학교를 나와 대학 강사 생활을 잠깐 하다가 고향 거창으로 돌아와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유순영, 정재경, 주경중, 홍준 등과 함께 향토 문화 예술제인 아림 예술제를 만드는 데 힘쓰고 음악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거창 출신으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작곡가인 이만방 숙명 여자 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이만방의 작품들은 런던 심포니에타를 비롯하여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연주되었으며 여러 대학과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1995년 4월 24일 창단된 ‘거창 여성 합창단’은 전국적으로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합창단이다. 대중음악의 맥을 이어 온 ‘거창 악우회’는 지난 1941년 ‘거창 가무단’으로 창립해 해방 이후 ‘거창 악우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매년 군민을 위한 위안 공연, 군민 노래자랑 개최, 군부대 및 성심원 위문 공연 등으로 군민 정서 함양과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해 왔다.

[문학]

거창은 1950년대 후기 학생 문화 운동으로 토백회(土白會)가 조직되었지만, 1970년대에 한맥회[1978년 창립]가 문학의 밤을 여는 등, 오랜 침체기를 거쳤다. 그렇지만 아림 예술제에서 배출된 문인들은 중앙 문예지나 신문 등을 통해 등단하고 지금도 중앙 문단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거창에서는 1980년대에 이르러 청년 문학이 싹트기 시작하여서, 『늘 푸른』·『향민 문학』 등이 출간되었다. 1988년 거창군이 주도하여 향토 문예지 『거창 문학』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여기에는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창 출신 시인 전기수, 신달자, 이기철과 시인이자 소설가인 표성흠과 거창군의 교사, 학생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거창 문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문인 협회 거창 지부는 1999년 거창 지역 예술인들의 친목과 권익 옹호를 위해 회원 8명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거창 문인 협회 기관지 『거창 문단』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2008년에는 한국작가회의 거창지부를 창립하였다.향토 문학인으로는 신계식, 표영수, 신중신, 신달자, 신중혁, 표성흠, 백신종, 이경재, 신승렬, 염민기, 정연탁 등이 있다.

[현황]

엄격한 유교 사회인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치하를 거치는 과정에서 서구적인 의미의 문화(文化)와 예술(藝術)이라는 개념은 선비와 절의의 고장 거창에서, 그 정립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에 들어와서야 사회 운동 차원의 일부 국민 재건 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거의 관(官) 주도의 행사에 그쳐 진정한 의미의 문화 예술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진 몇몇 인사들을 중심으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고 문화 활동을 통한 군민의 위안과 거창군의 면모를 새롭게 해 보자는 취지로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와중에서도 악극단(樂劇團)인 ‘거창 가무단(居昌歌舞團)’이란 단체가 숨 쉬었으며, 50년대 후반기 들어 학생 문화 운동으로 ‘토백회(土白會)’가 조직되어 문학·미술·음악 등의 장르에서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자라나는 청소년의 문화적 전인 교육을 위하여 이석화, 유순영, 정재경, 주경중, 홍준 등이 향토 문화예술제인 아림 예술제를 만들고, 문학·미술·사진·음악·연극·무용 등의 6개 장르에 걸쳐서 읍내 일원에서 개최하였다. 아림 예술제는 2012년부터 ‘거창 한마당 대축제’에 통합되어 개최되고 있다. 아림 예술제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거창 출신 문인·화가·서예가·국악인·연극인 등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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